양말을 뒤집는 사람

사라지고 있는 어떤 유능함에 대하여

by 주정현


"이렇게 똑똑하고 유능한 분이 집에서 아이들만 키우고 계시다니, 너무 아깝네요."


언제였더라. 어느 모임에서 들은 말이었다. 그 말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억에 남았다. 그 말에는 분명 호의와 존중이 담겨 있었다. 나의 가능성과 능력을 좋게 봐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웠고, 그 말을 해줬던 사람의 그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곱씹을수록 마음 한편이 울컥했다. 감사와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마지 내가 제자리를 제대로 찾고 있지 못한 사람처럼, 나의 인생과 능력, 나의 쓰임과 시간들을 어딘가에 흘려보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로 사는 건 인생의 낭비일까?


감히 그 질문이 고개를 들면, 곧바로 따라붙는 대답들이 있다. "아니야, 엄마는 미래를 키워내는 존재잖아.", "세상에 엄마로 사는 일만큼 위대한 일이 어디에 있겠어." 이런 말들이 분명 틀린 것은 아니지만... 들을 때마다 아주 잠깐 마음이 위로되기는 하지만... 그러나 음... 그것은 그저 너무 도덕적이고 너무 듣기 좋은 말일 뿐이었다. 세상은 그 문장들만큼 양육자들에게, 주부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허울뿐인 존경과 존재하지 않는 대우.


엄마로 산다는 일의 현타는 때때로 아주 사소한 곳에서 온다. 이를테면 빨래통 속 양말을 뒤집을 때. 양말은 언제나 뒤집혀 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무신경하게 양말을 벗어 그대로 빨래통에 넣었을 것이다. 굳이 뒤집어 넣지 않아도 누군가 대신해 줄 거라는 걸, 자신의 무신경함과 게으름을 커버해 줄 '백업 멤버'가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늘 나다.


그 양말을 하나하나 뒤집어 세탁기에 넣으면서 나는 문득 생각한다. 가족의 무신경함은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이렇게 쓱 지나가는데,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깨끗하게 세탁된 양말을 옷장에서 만나게 될 텐데, 오히려 나는 그 행동의 결과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니. "이렇게 똑똑하고 유능한 분이 집에서 양말을 뒤집고 계시다니, 너무 아깝네요." 머릿속 어디선가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도 완벽하게 양말을 뒤집었어!"라고 스스로 뿌듯해할 리도 없다. 오히려 누군가의 발을 감쌌던 양말의 축축하고 지저분한 감촉만 손에 남는다. 이 일에는 성취도 없고, 박수도 없고, 분명한 보상도 없다.


내가 하는 일이 뭘까. 딱 떨어지지 않는 일. 끝이 보이지 않는 일. 그게 양육자이자 주부인 내가 하는 일이다. 너무 많은 일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하나 떼어 설명하기가 어렵다. 매일 반복하며 하는 일이 족히 마흔 가지는 되는 것 같은데, 그 마흔 가지를 주섬주섬 늘어놓을 수는 없어서 그저 주부라고만 말한다. 그중 어떤 일에도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보상은 없다. 그저 내일 다시 반복될 뿐이다.


내가 있어서 식구들의 하루는 매끄럽게 흘러간다. 내가 있어서 아이는 학교에 지각하지 않는다. 침대 위에서 헤롱거리며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도, 5분마다 다시 침대에 찾아와 깨워주는 엄마가 있으니까. 스스로 세탁을 하지 않아도 이틀에 한 번씩 깨끗하게 빨아진 교복을 입고 등교할 수 있다. 하교하면 신선한 과일과 건강한 간식이 준비되어 있고, 저녁 시간이면 갓 지은 집밥이 식탁에 차려져 있다. 목이 마르면 언제든 찬장에서 컵을 꺼내 물을 마실 수 있다. 컵을 싱크대에 넣지 않고 식탁 위에 둔 채로 가도 상관없다. 몇 시간 뒤면 그 컵은 저절로 사라지고, 식기세척기 안에서 깨끗하게 씻겨 다시 제자리에 놓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이 모든 일은 해가 매일 뜨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풍경이다.


그래서 이 모든 수고는 칭찬받지 않는다. "엄마, 오늘도 컵이 깨끗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이런 인사를 지난 15년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모두가 그저 찬장을 열고 컵을 꺼내 물을 마신 뒤, 다시 식탁 위에 놓을 뿐이다.


모든 일상의 마찰을 미리 닦아내는 사람. 그게 나다.


이 지구상에서 나를 대신해 '엄마'라는 이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나의 고유성은 대체될 수 없으니까. 엄마라는 자리가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지도 잘 알고 있다. 허울뿐인 좋은 칭찬일 뿐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했지만 엄마는 위대한 사람이 맞다. 하지만 반복되는 집안일과 끝없는 '뒤치다꺼리' 속에서 나는 점점 희미해진다. 아니, 희미해진다고 느낀다. 나는 아이들이 학업이라는 '아주아주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회사원인 남편이 회사일이라는 '아주아주 중요한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에 불과한 걸까. 그렇다면 나는 누굴까. 나의 하루는 분명히 한순간의 쉴 틈도 없이 꽉 차 있는데, 정작 그 하루 속에 '나'는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양말을 뒤집는 손이, 컵을 치우는 손이, 아이를 깨우는 손이 언젠가 다시 다른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내려놓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나의 언어와 나의 일과 나의 이름을 붙잡고 싶다. 아이들이 모두 독립한 먼 미래에는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아직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오늘의 나는 양말을 뒤집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하루가 무너지지 않도록,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미리 정리하고 대비하는 사람.


완전히 체념하지도, 완전히 납득하지도 못한 채로 그렇게 매일이 반복되고 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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