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일정 사이에서만 생기는 엄마의 시간
아이들의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하루의 리듬이 완전히 바뀌었다.
학기 중에는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면 곧장 근처 카페로 향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딱 세 시간. 아직 저학년인 막내가 급식만 먹고 하교하는 날이 잦아 더 긴 개인 시간을 갖기는 힘들었지만, 매일 세 시간이면 꽤 의미 있는 개인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모닝 페이지를 쓰고, 미뤄두었던 책을 읽고, 나와 세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고, 외국어 공부를 했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작아 보일 수 있지만, 매일 꾸준히 반복해 온 이 오전의 세 시간은 나를 나로 살게 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아도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 시간만큼은 ‘엄마’도 ‘아내’도 아닌, 그저 나 개인의 한 사람으로 존재했다.
아이들이 겨울방학에 들어가면서 그 시간은 사라졌다. 오전은 더 이상 나의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의 일정에 종속된 시간이 되었고, 나는 그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하루 이틀은 물론 괜찮았다. 하지만 이 시간이 2주, 3주로 늘어나자, 이유를 정확히 말할 수 없는 우울감이 서서히 마음속에 차올랐다. 고작 카페에서 보내는 두세 시간의 의미가 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은 단순한 여가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나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집은 나에게 휴식의 공간이 아니다. 집에 있는 순간, 나는 자동으로 살림하는 사람이 된다. 아이가 “아, 배고파. 입이 심심해.” 하고 중얼거리면, 그것은 단순한 허기의 표현이 아니라 내게는 간식을 대령하라는 업무 지시처럼 들린다. 누군가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 사람이 살다 보면 집이 어질러지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 모든 풍경이 나에게는 실시간으로 업무가 늘어나는 장면으로 보인다. 다섯 식구의 살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고, 집에 있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집에 있으면 마치 퇴근하지 못한 채 일터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에게는 어디에선가 ‘퇴근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퇴근이 바로 매일 오전 카페에서 보내던 세 시간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늘 애매한 반 출근 상태였다. 몸은 집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업무를 대기하는 상태로. 그렇게 겨울방학은 흘러가고 있다.
그러다 가끔, 아주 드물게 그 반 출근 상태가 잠시 풀리는 시간이 있다. 아이 셋의 학원 일정이 기적처럼 맞아떨어질 때다. 오늘은 첫째가 수학 학원에 간 시간과 둘째, 셋째가 영어 도서관에 간 시간이 조금 겹쳤다. 그렇게 해서 생긴 시간은 한 시간 반. 나는 망설임 없이 근처 아파트 상가 1층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다행히 빈 테이블이 딱 하나 있었다. 따뜻한 카페 라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외투를 벗으니, 내가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펼쳤는데….
몸은 잠시 느슨해졌지만, 마음까지 따라오지는 못했다.
살짝 몰입하다 보면 시간의 감각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몇 차례나 시계를 확인하다가 아예 알람을 맞췄다. 아이들 픽업 시간을 놓치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여기에 머물러도 괜찮은지, 혹은 이제 정리해야 하는지를 머릿속으로 계속 가늠하면서. 알람까지 남은 시간을 세는 초시계처럼, 마음도 점점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도 온전히 지금 여기에 있지 못했다. 몸은 카페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이미 아이들 픽업 장소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시간은 내가 선택해서 가진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 일정 사이에서 우연히 발생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어떤 변수로든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이 시간 앞에서 나는 끝까지 긴장을 풀지 못했다. 아쉽게도 책장도 마음먹은 만큼 술술 넘어가지 못했다.
아이들을 픽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묘하게 답답해졌다. 분명 혼자 있는 시간을 가졌는데도 쉬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를 위해 쓰려고 했던 시간이 끝내 나에게 도달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 시간 내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 개인의 시간에서 엄마의 시간으로.
혼자 카페에 앉아 있으면서도 계속 시간을 확인하는 이 습관은 단순한 조급함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아직 내 시간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늘 누군가의 일정 사이에서만 나를 꺼내 쓴다. 아이들의 시간표가 만들어낸 틈 사이에서 잠깐 개인이 되었다가, 그 틈이 닫히면 다시 엄마로 돌아간다. 나의 시간은 스스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조건에 의해 발생했다가 소멸한다.
과연 나는 언제쯤, 누구의 시간표에도 끼어 있지 않은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우연히 주어지는 틈이 아니라, 사라질 것을 전제로 하지 않은 시간.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는 긴장 없이, 온전히 머물러도 되는 시간 말이다.
오랫동안 엄마로 살면서 나는 ‘내 시간의 소유자가 나’라는 감각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시간을 내 것이라고 느낄 수 있었던 그 감각 말이다. 그 감각을 다시 회복하지 않는 한, 아무리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겨도 나는 여전히 떠날 준비를 한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