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 뜨거운 말
시필사 4일 차. 2026. 3. 9. (월) 박연준, ‘뜨거운 말’ -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2024)> 중에서
[뜨거운 말]
뜨거운 것을 쓰다 쏟았습니다 미안해요 부치진 못할 것 같군요 미지근한 건 문학이 아니야, 말하는 어른 여자를 만난 저녁 쭈꾸미를 먹었습니다 뛰지 않는 심장과 뛰려는 심장 사이에 사랑을 접어놓고
마음이란 뭘까요 호호 불어 먹고 싶은 마음이란 어디에 간직해야 하는 걸까요
당신은 오늘 내 손을 꼭 잡고 귓속에 뜨거운 말을 부어주었습니다
그것을 안고 멀리 갈 거예요
당신이 나를 처음 본 날,
쉬운 퀴즈를 풀듯 나를 맞혀버렸다는 걸 기억할 거예요
당신이 좋아서
다가가고 싶지가 않아요
겨울 숲에
봄 아닌, 다른 계절이 오면
그때 갈게요
마음이란 뭘까요?
심리학이라는, 마음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나서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참 많이 던졌습니다. 그런데 아직 저는 마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게다가 호호 불어 먹고 싶을 만큼 뜨거운 마음이 무엇인지, 무엇이 내 마음을 그렇게 뜨겁게 만들 수 있는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 탐색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입니다.
어제,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호주전 경기를 봤어요. 9회 말, 두 손을 모으고 추가 실점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화면을 보고 있는데 국가대표팀의 주장인 이정후 선수가 몸을 날리며 상대팀의 안타성 타구를 잡아내는 놀라운 모습을 보고, 그리고 경기가 끝난 직후 글러브로 얼굴을 가리며 엉엉 우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토록 간절함과 열정이 느껴지는 마음이라니. 나에게는 저런 간절함으로 끓어오르는 마음이 있을까. 저런 열정이 묻어나는 마음이 있을까.
스포츠 장면에서만 느껴지는 벅찬 감동이 있습니다. 그런 순간을 보면 마음이 절로 같이 뜨거워지지요. 아마 우리가 스포츠 중계를 즐겨 보는 이유도 그 뜨거운 마음을 함께 나누고 느끼고 싶어서인지도 모릅니다. 미지근한 스포츠 경기는 선수에게도 관중에게도 재미가 없지요.
인간관계에서나 사회생활에서는 너무 뜨거워지는 것을 오히려 조심합니다. 내가 너무 앞서 나가면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까 봐, 혹은 서로에게 민망할까 봐 마음의 온도를 조금씩 낮추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스포츠 경기에서는 예외입니다. 마음껏 원하는 만큼 뜨거워져도 괜찮습니다. 소리 지르고, 환호하고, 간절해하고, 심지어 눈물까지 흘려도 되지요.
문득 나는 무엇에 그렇게 뜨거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어느새 40대가 되었고, 열정적인 마음이 너무 뜨거워져서 나까지 태워 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어른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20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쉽게 뜨거워졌던 것 같아요. 나를 활활 불태워버린 뒤의 일은 미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무모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뜨거워질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신났습니다. 내 안에 이런 온도가 있다는 걸 발견하는 일이 재미있어서, 마음껏 뜨거워지고 또 신나게 뜨거워졌던 것 같아요.
지금의 나는 무엇을 향해 다시 뜨거워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