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사랑

황인찬, 무화과 숲

by 주정현


시필사 5일 차. 2026. 3. 11. (수) 황인찬, ‘무화과 숲’ - 시집 <구관조 씻기기(2012)> 중에서

[무화과 숲]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시 속에는 정작 무화과가 등장하지 않는데 왜 제목이 ‘무화과 숲’일까 고민하다가 '무화과는 꽃이 피지 않는 과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꽃과 열매가 과실 안에서 피어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다. 사랑까지도 사치로 여기는 혹은 사랑에까지 오답을 걱정해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황 시인의 시적 감수성'라고 말하는 한국경제 기사(2017.7.22)를 찾게 되었습니다.


전날 읽은 박연준 시인의 '뜨거운 말'도 그렇고 오늘의 시도 그렇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네요. 이 감정에 관심이 지극했던(쓰다가 '관심'이 '광심'이라고 오타가 났는데 어쩌면 정말로 그 당시의 마음은 狂心, 그 자체였을지도요), 연애 감정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애달팠던 스무 살 무렵의 내가 이 시를 읽었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집니다. 과거의 나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나는 어떤 감상을 내놓았을까요. 그런 궁금함과 약간의 아쉬움이 생기네요.


결혼 이후의 사랑은 마음껏 뜨거워져도 되고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사랑입니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편안함의 습격>에서 말하듯 때때로 인생의 불편함과 번거로움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어쩌면 조금은 위태로운 사랑의 감정이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불륜을 하면 안 되겠지만요...)


저는 무화과처럼 꽃을 숨기는 사람이기보다는, 차라리 체리나무처럼 꽃도 만발하고 새빨간 열매도 탐스럽게 드러내며, 감정을 겉으로 다 내보이는 사랑을 해 온 사람이에요. 그래서인지 무화과처럼 은밀하고 애달픈 사랑의 감정으로부터는 조금 멀리 와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대놓고 꽃을 흔들어대는 체리나무 같은 저를 보며, 누군가는 “참 단순하게 산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혹은 그 단순함을 조금은 부러워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다가 문득 여기까지 글을 쓰다 보니 알게 된 것인데요, 현재의 제과거의 그 숨겨야만 했던 사랑의 감정을 애달파하고 그리워하며 궁금해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사랑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던 20대의 시간이 이미 다 지나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단단하고 안정된 배우자의 사랑 덕분에, 제 마음이 그만큼 단단해졌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그 시절의 위태로운 사랑조차도 조금은 그리워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고 아침에는 아침을 먹듯, 일상의 반복처럼 사랑이 자연스러운 일이 된 사람이라서, 밥을 먹는 일만큼이나 사랑이 삶 속에 스며든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 모든 마음이능했던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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