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라는 새

권오삼, '전투기'

by 주정현

시필사 6일 차. 2026. 3. 13. (금) 권오삼, '전투기' - 동시집 <라면 맛있게 먹는 법> 중에서


[전투기]


귀청을 찢을 듯

쌔애액 지나가는,

뾰족하고 기다란

부리를 가진

저 새


멸종해야

지구에 평화가 온다고 했는데,

자꾸만 불어나니

무슨 까닭인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요?



토요일 오전, 첫째 아이와 아침식사를 하다가 아이의 영어학원 선생님(미국 출신의 원어민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어릴 적 장래희망이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는데, 그 꿈을 응원하고 싶었던 가족들이 실제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용지에 선생님의 이름을 적어냈다는 이야기였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대통령 투표용지에 아이의 이름을 직접 적어 넣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잘 이해되지 않아서 살면서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 투표용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사진출처: 뉴욕타임스 https://www.nytimes.com/live/2020/10/20/us/trump-biden-election


제가 찾아본 사진은 비록 2020년 선거의 투표용지였지만, 거기에서 현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이 발견했습니다. 문득 며칠 전 뉴스에서 접했던 이란의 초등학교 폭격 사건과 그곳에서 희생된 어린 생명들이 떠오르면서, 이 사건에 대해 트럼프 이름 옆에 검은 잉크를 찍었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희생된 어린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까요?


물론 한 장의 투표용지, 작은 잉크 자국 하나가 세계의 비극을 직접 만들어 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행사하는 주권은 너무 작아서 종이 한 장 위의 점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동시에 현대의 정치 시스템이 민주주의라면, 그 작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방향을 만든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책임의 조각들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돼요. 투표용지 위의 작은 잉크처럼 작고 가벼워 보이는 주권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때로는 그 책임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약 민주주의가 시민들의 선택 위에서 작동하는 제도라면, 그 선택의 결과 역시 완전히 남의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전투기라는 새가 멸종하지 않도록 그 뾰족한 주둥이의 새에게 매일 먹이를 주는 존재는 사실 우리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사기병>의 작가이신 고 윤지회 작가님의 일러스트가 반가워 동시집 사진도 함께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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