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정현 Sep 16. 2020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이도우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제가 중앙대 문창과를 나왔는데, 저는 당연히 주변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저희 부모님들도 '뭐, 대충 부산이니까 부산에 있는 부산대 국문과 정도 가지 않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지냈었는데, 어느 날 예전에 보면 '샘터', '좋은 생각' 이런 올드한 옛날 잡지 있었잖아요. 거기 보면 '자유기고가' 해가지고 수필 같은 간단한 글을 싣고 '자유기고가 누구누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뭐 이렇게 나와있어서, 아 그러면 자유기고가는 정식으로 회사를 다니지 않고, 이렇게 글을 써서 원고를 이런데 실어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아름다운 오해를 했었죠. 그때는 그렇게 해서 먹고살 수 있는 건 줄 알았어요.


 이도우 소설가가 출연했던 김하나의 측면 돌파, <그저 이도우 소설로 불러주면 좋겠어요> 편의 방송을 들었다. 올해 초쯤에 한 번 들었었던 방송인데, 8월에 이도우 작가의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를 읽고 나자 다시 한번 방송이 듣고 싶었다. 방송을 듣다가 초반 10분쯤에 나오는 위 인터뷰가 귀에 확 들어왔다. 그리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난달에 올드한 옛날 잡지 '샘터'에서 원고 청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방송을 들을 때쯤 마감을 끝내고, 잡지가 발행되기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아, 그러면 나는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았으니 이제 자유기고가 누구누구가 된 것일까?  


그리고 월간 샘터는 무사히 발행되어 이렇게 내게 왔다. 늘 온라인으로 글을 쓰다가 활자로 인쇄된 내 글과 이름을 보는 건 또 다른 경험이었다. 자유기고가 누구누구씨의 데뷔작인 셈.


 나도 한때는 희망 진로에 '국문학과' 혹은 '문예창작과' 이런 것들을 써넣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보면 나의 희망직업은 작가. 원하는 전공은 국문학과. 이렇게 쓰여 있다. 중학교 때도 여전히 글 쓰는 일을 좋아해 인터넷에 웹소설 같은 것들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소설들은 아직까지도 온라인 공간 어딘가에 잠들어있다.) 하지만 글 쓰는 직업에 대한 아름다운 오해를 채 갖기도 전에 부모님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국문학과를 가는 건 아니다. 거기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라고(?) 그보다는 더 취업에 유용할 것 같은 사회과학 쪽 전공을 은근슬쩍 권유하셨다. 그리고 나도 입시가 문턱 앞까지 왔을 때는 왠지 국문학과 공부는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떠들고 말하기 좋아하는 내 성격에는 사회과학 쪽 공부가 더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최종적으로는 심리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그것을 보도하는 글쓰기...라는 뭔가 허세스럽고 허울 좋은 타이틀을 획득했다. 막상 전공 공부를 시작하고 문을 열어보니 나의 흥미와 진로는 마치 파도에 휩쓸리듯 먼바다로 떠내려가 정신을 차려보니 임상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대학원을 마칠 때쯤 세 살 딸아이의 엄마는 덤. 그리고 그다음 해에 유학을 떠나는 남편을 따라 둘째를 뱃속에 품고 태평양을 건넜다.


 결국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전공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지만 이 나이 먹고 보니 '남편 직장 따라 해외에 사는 애셋 엄마'라는 타이틀에 멈춰 서고 말았다. 그러나 큰 불만은 없다. 나는 공부도 많이 하고 싶었고, 그럴싸한 멋진 직장도 갖고 싶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세 아이의 엄마도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네 아이 엄마가 되고 싶기도 했는데 그거는 아무래도 능력 밖인 것 같아서 포기했다.) 물론 대학 때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졸업한 게 아깝다는 생각도 때때로 들었다.


 하루는 그런 생각이 유난히 짙게 들었던 어느 날 밤, 인터넷 맘 카페에서 '이렇게 전업주부로 살 줄 알았다면 쓸데없이 치열하게 공부 열심히 했다'는 글에 "그리 살아서 지금 그거 가지고 누리시는 거예요. 그리 안 살았으면 이거 못 누리십니다."라는 현자(현맘?)의 댓글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다. 그렇다. 과거의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 거다. 이 댓글을 평생 기억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책과 영화를 보며 끝없이 타인의 삶과 만나는 건 이런 간접경험에 대한 욕구가 아닐까. 르 클레지오의 말처럼 '나는 나의 인간성과 육체를 떠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우리를 끊임없이 타인의 삶과 고백 속으로 탐험하도록 밀어 넣는 것 같다. 
이도우,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중에서


 지금은 치열하게 공부했던 그 시절의 에너지로 자식을 잘 키우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아이의 행복한 엄마로 사는 일도 쉽지 않다. 능력 있고 성품 좋은 남편은 아무나 얻나. 그리고 시국이 이렇다 보니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의 일상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전업주부의 위치가 다행스럽다 생각되고,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온전히 함께 해줄 수 있는 엄마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만족감도 컸다.


 그리고 여전히 엄마의 역할 외의 여러 가지 부업(?)을 하며 일상을 꾸려 나간다. 나는 매주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쓴다. 예전에는 그림을 그려서 갤러리에 판매한 적도 있다. 일주일에 다섯 편씩 유튜브에 방송을 올린다.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내가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에 과거의 학력이나 자격증이 필요한 일은 없다. 그렇지만 또 그 시간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한때는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서 매일 화실에 다니고 예중 입시를 보게 해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다. 그다음에는 작가가 되고 싶다며 글을 쓰는 것을 배우고, 매일 글을 썼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잠깐이지만 출판과 관련된 일도 했었다. 어찌 보면 지금 나의 일상을 보람차게 만드는 여러 가지 일들의 밑바탕에는 과거의 경험과 노력이 녹아 있는 거였다. 어릴 때는 국문학과를 졸업해야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신문방송학과를 다닐 때는 방송국에 입사해야만 영상제작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 일을 하는 데 굳이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자유기고가 누구누구가 되는 것이 그랬듯이. 


 그러니까 지금을 후회 없이 즐기며, 지금 전업맘으로서의 생황을 즐기려 한다. 그리고 내가 예전에 가졌던 꿈을 잊지 않고, 그 일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 또 빛나지 않을까. 지금은 ㅇㅇ엄마로 살아가지만, 먼 훗날 그 당시 내 전공과 내 노력이 빛을 볼 날이 또 올 거라 믿고 있다. 미래에 뭘 꼭 하겠다고 노력하는 걸 수도 있지만, 그런 보상을 원해서 뿐만 아니라 인생 어느 곳에서나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나 자신인 것 아닐까. 인생은 기니까,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즐기는 것.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지.  


 올해는 월간지 샘터 발행 50주년이었다고 한다. 오래오래 글 쓰는 사람으로 기억되라고, 나의 첫 원고 청탁은 오래된 전통이 있는 월간지에서 왔다고 의미 부여를 하고 싶다. 올드한 옛날 잡지는 미래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그러나 어느새 우리의 현재가 된 2020년이라는 숫자까지 5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꾸준히 곁에 있었다. 작가가 되는데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꾸준함은 필요하니까. 그리고 열정적이고 치열하게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인생을 꾸려나가고 싶다. 엄마로서의 삶,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 모두 대학 졸업장은 필요없지만 치열하고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261



 


작가의 이전글 아이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