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엄마 실비아 님께서 리사 팰드먼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을 소개해주셨다. 임상심리학을 전공했으나 현재는 인지심리학자로 살아가고 있는 저자가 쓴 책이고, '시작은 임상심리학이었다'는 공통점에 끌려 꽤 두꺼운 책인데도 읽어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전문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고 용어도 어려워서 소개해주신 분은 이걸 어떻게 원서로 읽었지? 하며 계속 신기해하는 중이다.
7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감상은 크게 두 가지인데, 2013년에 내가 심리학 석사학위를 획득한 이후로 그동안 끊임없이 학문적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당대의 이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혹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고전적인(classical) 이론이 되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한 학기 혹은 그 이상의 분량에 해당하는 한 편의 완벽한 심리학 강의가 책 한 권에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감정을 2014년도에 출간되었던 서은국 교수님의 책 <행복의 기원>을 읽으면서도 느꼈다. 나는 학부 3학년 때 서은국 교수님의 '주관적 안녕감'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출간 다음 해에 이 책을 읽고는 한 학기 강의가 책 속에 통째로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다. 수백만 원의 등록금을 내고 들었던 강의와 만원 남짓한 한 권의 책이 주는 지식의 양이 엇비슷하다니. 전자의 비용을 지불하고 동량의 지식을 습득한 나는 약간의 억울함을 느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책을 꼼꼼하게 읽고 읽고 유튜브에서 저자의 세바시 출연분이라든지 혹은 그와 비슷한 다른 강연 영상을 좀 더 찾아보면 3학점짜리 대학 강의 한 편과 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행복의 기원'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3학년 때 들었던 주관적 안녕감은 그 이후로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을 바꾸었다. 삶을 대하는 전반적인 태도가 달라졌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이 바뀌었다. (그 기준에 너무 확고한 확신이 있었던 나는 그로부터 딱 2년 뒤에 결혼이란 걸 한다...)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고, 삶에 대한 감사할 줄 아는 태도가 그 이후로 모든 일상의 기본값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학부 4년(사실은 전공을 세 개씩이나 욕심내는 바람에 학부를 9학기 동안 다녔으니 4년 반) 동안 들었던 강의 중에 베스트 3을 꼽으라면 항상 주저하지 않고 꼽는 강의이기도 하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는지 항상 선배들이 심리학과에 들어와서 꼭 들어봐야 할 강의로 추천해줬고, 타과 학생들도 정말 많이 듣는 강의였다. 심리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나와 같은 상담학회에 있었던, 심리학에 매우 관심 있었던 한 선배도 이때 나와 강의를 함께 들었는데, 기술적인 이론만 가득한(그는 이과였다...) 전공 강의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런 삶에 대한 통찰을 던져주다니, 이러니 내가 심리학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며 찬사를 던지기도 했다. 이 아름다운 강의에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교수님이 학점은 굉장히 짜게 주는 편이어서, 학기 말에 조금 가슴이 쓰리다.
그런데 최근(이라고 해봤자 재작년이지만)에 출간된 같은 심리학 분과(성격/사회심리학)의 서울대학교 최인철 교수님이 쓴 <굿 라이프>를 읽으며 그 간의 연구동향에 대한 업데이트 버전을 읽을 수 있었고, 내가 예전에 배웠던 많은 것들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았다. 내가 주관적 안녕감 수업을 들었던 2007년은 최인철 교수님의 <프레임>이 출간된 해였다. 같은 저자의 <프레임>과 <굿 라이프>.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든 10년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내가 대학 때 받았던 교육은 구식의 것이 된 것이다. 마치 명왕성이 아직 태양계에 속한 행성이라고 믿는 사람들처럼.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도 역시 그렇다.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 '정설'이라고 믿고 있던 이론들을 '고전적 견해'라고 말하는 뼈아픈 팩폭의 연속이었다.
예전에 박혜란 선생님의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에서 전업주부로 산 경력이 길어질수록 지적 능력은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최종학력에서 전업 주부로 한 햇수만큼 1년씩 마이너스로 계산하면 현재의 지적 수준이 나온다는 슬픈 이야기였다. 나도 2014년까진 파트타임 주부였다가 2014년에 풀타임 전업주부가 되면서 그 위기감이 생겼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열심히 꾸준히 그리고 치열하게 책을 읽은 건. 사실은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공부 형태가 많지 않았고, 예전처럼 읽어야 할 논문 더미에 치이지 않으니 활자를 읽는 그 행위 자체의 즐거움이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오늘도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웬만한 대학교육을 넘어서는 이런 책이 있어서, 그리고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대학을 졸업한 지 올해로 딱 10년째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교육은 그때 마쳤다. 그렇지만 계속 배우고 공부하고 싶다. 수십 년 전에 배웠던 그 지점에서 멈춰 서고 싶지 않다. 내가 배웠던 지식을 과거의 이론이라며 부르는 현재의 흐름이 있는데, 나만 과거에 멈춰서 그걸 진실로 평생 착각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다시 캠퍼스로 돌아가 가방끈을 더 늘려보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건 언제의 이야기가 될지 모르니 일단 지금은 좋은 책을 읽는 것. 그리고 치열하게 생각하는 것. 그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려고 한다. 사실 그 이상의 최고의 공부 방법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꾸준히 이렇게 공부해보려 한다. 언제까지나 공부하는 엄마로 남고 싶기 때문에.
학교는 학교고, 공부는 공부다. 두 가지가 항상 겹치는 건 아니다. 학교에 있든 아니든,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