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학교 신입생

『삼베학교』 에피소드.3

by 루화



금소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국도에 ‘안동포 타운’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안동포 타운 내에 안동포 전시관이 크게 있고, 그 옆으로 삼베교육이 열리는 전승교육관이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다.


베틀짜기실, 작업실 1, 작업실 2.

전승교육관 내부는 몇 개의 공간이 교실처럼 나뉘어있고, 긴 복도를 따라 삼베 짜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이 걸려있다.


삼베교육은 전승교육관에서 생냉이반과 무삼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생냉이’와 ‘무삼’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생냉이는 삼의 겉껍질을 삼톱으로 훑어 말린 계추리를 째서 고운 실을 만드는 과정이고, 무삼은 삼의 겉껍질을 훑지 않고 물레로 감아 잿물에 정련하는 과정이다. 무삼이 생냉이보다 실의 굵기가 굵고, 현재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삼베는 무삼의 과정과 같다. 삼의 겉껍질을 한번 더 훑어내어 고운 빛깔을 내는 생냉이는 현재 안동지역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나는 앞으로 1년 동안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이곳에서 생냉이 교육을 듣는다.


오전 9시,

교육이 열리는 작업실 2 공간에 문이 활짝 열렸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생냉이반은 총 10명. 그중 두 분은 기능전승자 선생님이고 여덟 명은 교육생이다. 교육생 중 신입생은 나 포함 두 명이고, 다른 교육생분들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삼삼는 걸 봐오며 삼베를 가까이 접한 분들이다.


삼베학교 생냉이반의 풍경은 마치 마을회관의 풍경과도 같다.

작업실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 보일러를 튼다. 보일러는 온돌바닥을 따뜻하게 데운다. 바닥에 떨어진 삼 가닥들을 비로 한번 쓸어낸다. 전기 주전자에 물을 가득 받아 끓인다. 아침 참을 준비하는 교육생 선생님들은 밥솥을 꺼내 깨끗이 닦고, 고구마를 반 썰어서 솥에 안친다. 전기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쯤이면 하나 둘 모여 자리에 앉는다.


“커피?, 차?”

‘저는 커피요.’


“서울 아가씨는 뭐 타고 왔어요?”

‘버스요.’


“선생님도 버스 타고 오시지 않아요?”


“맞다, 버스에서 만났다. 시내에서 타드만.”


나는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를 홀짝 마신다.


사과, 빵, 옥수수...

한 테이블에 펼쳐진 다양한 구성의 아침 참을 둘러앉아 함께 나눠 먹는다.


“어여 먹어.”

‘감사합니다.’


9시 20분이 지나서 누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아이고, 9시 30분까지 아니었는겨?”


“누가 신입생이 첫날부터 지각인가?”


“아이고, 죄송합니다. 나는 30분이라고 들었는데 전화와 갖고 놀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이고, 앉으셔요. 커피?”


“이것도 먹어, 다 먹어”

‘네, 감사합니다.’


어느새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나는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참을 받아먹는다.


“달에 한번 만원씩 회비를 걷어요. 걷은 회비로 간식 준비하는 거예요.”

‘네, 다음 수업 때 현금을 찾아와서 드릴게요.’


교육생 선생님이 물에 담가 둔 계추리 다발을 정리한다.


“자, 다 드셨으면 이제 이거 감아보소.”


“계추리 불렸는가?”


“잘 불려졌네요.”


물에 담가 불린 계추리 다발을 하나씩 받아 든다.


<계추리>
삼 줄기의 겉껍질을 삼톱으로 한번 더 훑어내 노랗게 말린 삼. 고운 생냉이 직물의 재료가 된다.
<삼이 계추리가 되는 과정>
뜨거운 온도에서 푹 익혀진 삼을 꺼내 건조한다. 마른 삼을 물에 불려 삼 줄기의 겉껍질을 손으로 훑어낸다. 훑어낸 겉껍질을 삼톱으로 한 꺼풀 또 벗겨낸다. 속껍질을 마당에 널어 말리면 이렇게 금빛으로 빛나는 삼, 계추리가 된다.


두 분의 기능전승자 선생님이 두 명의 신입생을 각각 맡아 가르친다.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은 강선생님이다.


“자, 잘 보소. 이래 감아요.”


‘아, 이렇게 동그랗게요?’


“응, 요래 요래 둥글게 감아요. 한번 해보소.”


나는 선생님의 시범을 따라 계추리를 동그랗게 감는다.


“바깥으로 감아야 돼.”


‘아, 바깥으로... 이렇게요?’


“그렇지, 잘하네.”


물기를 머금어 축축한 계추리. 동그랗게 감길수록 계추리의 무게가 점점 묵직하게 느껴진다.

동그랗게 감긴 계추리는 앙-하고 한입 베어 물고 싶은 주먹밥 같기도 하고, 뽀얗고 통통한 아기 주먹 같기도 하다. 한 덩이 감고 두 덩이 감고 어느새 세 덩이째,


“자, 이제 쉬는 시간이니 잠깐 쉬십시더.”


“루화씨, 손에서 고만 내려 노소.”


‘선생님, 멈출 수가 없어요. 계속 감게 돼요.’


“에헤, 쉴 땐 쉬면서 해야 됩니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선생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각자의 방식대로 휴식을 취한다.

벽에 붙어 몸을 일자로 스트레칭을 하고, 믹스커피를 타 마시고, 전화 통화를 하고, 블라인드를 걷어 창문 밖을 바라보기도 한다.


나는 그런 선생님들을 바라본다.

이곳에 있는 게 여전히 꿈만 같다.


“자, 다 쉬셨으면 이제 삼을 째봅시더.”


<삼 째기>
삼을 새수에 따라 가늘게 째는 작업.


강선생님이 다시 시범을 보인다.


“이래 동그랗게 감아놓은걸 한 손에 쥐고 한 줄기씩 풀어가며 삼을 째는 기라.”


나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돌돌감긴 삼 줄기 하나를 풀어낸다.


“자, 엄지손톱으로 넓적한 삼 줄기를 요래 가느다랗게 째는 기라.”


‘얼마나 가늘게 째야 돼요?’


“자연히 갈라진 부분을 째는기라, 이건 너무 굵지? 그럼 여기 가운데를 요래 엄지손톱으로 한번 더 째 주는 기라.”


‘아, 굵기를 일정하게 째는 게 중요하군요.’


”그래 일정하게 째야 새가 맞춰지지.”


‘지금 이 정도 굵기면 몇 새에요?’


“이건 7세 정도 될끼라.”


새 수가 높을수록 고운 직물인데, 금소마을에서 지금은 돌아가신 김점호 선생님은 보름새 직물까지 짜셨다고 한다.


“이걸 이래 째려면 엄지손톱을 길러야 돼.”


선생님은 삼 째기 시범을 보이시며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나는 선생님의 손톱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야물다. 가는 손톱의 양 옆을 단단한 살이 볼록하게 감싼 선생님의 손톱. 꼭 오래된 삼톱같다.

나는 내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들여다본다. 짧고 넓적하게 퍼져있는 야물지않은 서울아가씨 손톱이다.


‘선생님, 저랑 손 한번 대봐요.’


선생님 손톱 옆에 내 손톱을 마주 댄다.

시골 선생님은 노랗게 물든 옹골찬 손톱, 서울 아가씨는 넓적한 붉은 손톱.


나도 이렇게 오랜 세월 직물을 짤 수 있을까?

선생님의 손톱을 닮고 싶다.


내가 짼 첫 삼. 아주 뿌듯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금소마을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