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주체는 정말 '나'일까?
오늘 아침 니체를 읽다가 다시 한번 그의 통찰에 감탄했다.
특히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비판하는 대목에서 깊은 공감을 느꼈다.
니체는 어떤 생각은 '내'가 원할 때가 아니라 그 생각 자체가 떠오르기를 원할 때 떠오른다고 말한다. 이는 루소의 <고백록>에 나오는 문장, "생각은 자신이 원할 때 오는 것이지 내가 원할 때 오는 것이 아니다"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예전에 보았던 한 작가의 TED 강연이 떠올랐다. 그녀는 연이은 성공으로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genius’라는 단어의 어원을 떠올렸다고 한다.
고대에는 'genius'가 지금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 자체'를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을 지켜주는 수호신 또는 영감을 불어넣는 외부의 정령을 의미했다. 즉 “내가 천재다”가 아니라 “어떤 genius가 내게 영감을 주고 갔다”는 의미였다.
생각해 보면 많은 예술가들이 “영감이 번쩍 떠올랐다”라고 말한다.
우리 역시 일상에서 운전 중이나 샤워 중에 좋은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는 경험을 한다.
이는 내가 의지를 갖고 '생각해야지'라고 했을 때가 아니라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에 가깝다.
이런 경험을 가장 잘 설명하는 태도가 바로 “genius가 나를 찾아왔다”는 관점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자만으로부터 멀어지고 창작의 압박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동적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도 결국 그 사람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스스로 '준비된 자'로서 매일 성실하게 작업하고 기술을 연마하여 아이디어가 '들어올 통로'를 넓혀야 한다.
그리고 영감이 찾아왔을 때 그 순간을 ‘나 혼자 해낸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고 겸손하게 그 영감을 통과시키듯 작품을 완성하는 것. 이 균형이야말로 인간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노력'과 '겸손'이라는 두 미덕이 만나는 지점일 것이다.
니체가 데카르트를 비판한 것도 어쩌면 이와 닿아 있다.
우리는 사고의 주체를 ‘나’라고 가정하지만 그것은 문법적 관습일 뿐 '직접적으로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사람들은 문법적 관습에 따라 "사고는 활동이며 모든 활동에는 활동하는 주체가 있다. 따라서 사고하는 주체가 있다"라고 추론할 뿐이다.
사고라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때로는 나의 바깥에서 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생각한다”는 명제는 더 이상 절대적인 출발점이 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인간이 자기 능력만을 근거로 자만하거나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우리 각자는 어쩌면 모두 연결된 '하나'일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우리는 태어났고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태어난 이상 우리가 할 일은 단순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내는 것.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때로는 그것을 다스리며 준비된 마음으로 매일을 쌓아 가는 것.
그렇게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나에게도 genius가 조용히 다가와 새로운 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