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생존전략
니체는 철학적 개념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언어와 인종이라는 뿌리 깊은 조건 속에서 사유가 필연적으로 성장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는 철학을 일종의 '최고급 격세유전'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같은 언어권에서는 비슷한 문법 구조를 바탕으로 사고가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이 통찰은 로크가 주장한 ‘의식은 백지’라는 관점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로크가 언어를 단순한 도구로 보았다면 니체는 언어가 우리의 인식 자체를 규정한다고 보았다. 다른 언어체계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본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니체의 이러한 생각이 현대 유전학에서 말하는 ‘유전적 학습’ 개념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직접 배우지 않았더라도 조상들의 경험이 유전자를 통해 우리 몸속에 흔적처럼 남아 있다는 주장이다. 유전자 연구 이전 시대의 니체가 사유만으로 의식이 결코 백지가 아님을 간파했다는 점은 새삼 감탄스럽다.
하지만 유전자로 인간을 정의하는 방식은 나에게 한동안 깊은 허무감을 안기기도 했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난 뒤 “나는 결국 종족 번식의 운반체일 뿐인가?”라는 질문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카뮈가 말한 ‘세계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연결될 때 삶은 더욱 공허하게 느껴졌다.
최근 유튜브 채널 '보다'에서 본 인류의 진화에 관한 학자들의 대화는 이런 생각들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해주었다. 인간의 조상들이 생존을 위해 싸우다가 불을 사용하고 집단생활을 이루며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 지금의 인간으로 진화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것이다. 소통과 집단생활이 사피엔스가 살아남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책 <사피엔스>에서도 읽었지만 영상으로 접하니 다시금 내용이 상기되었다.
이런 진화를 떠올리면 인간이 지능을 발달시키고 문명을 쌓아 올렸지만 정작 그 지능으로 삶의 의미를 고민하며 허무함을 느낀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그런 생각은 최근 아이 학교 봉사활동 중에도 이어졌다. 빠르게 영어로 대화하던 엄마들 사이에서 나는 잠시 멍하니 딴생각에 빠졌다. “인간은 왜 이렇게 집단에 속하려 하고 끊임없이 소통하려 할까?” 하는 근본적 질문이 떠올랐다. 그 순간 사피엔스의 소통과 집단생활이 생존의 핵심 전략이었다는 내용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혼자 존재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 역시 내면 공부를 좋아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진심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을 원한다. 그리고 AI 시대를 사는 지금, 인간의 의미 역시 이 소속감과 소통에서 다시 찾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비인간적인 기술이 확장될수록 인간다움의 핵심은 더 선명해질 것이다.
하버드의 ‘행복 연구’ 결과가 말하듯 행복은 결국 관계에서 온다고 한다. 요즘 내가 너무 내 안으로만 파고드는 경향이 있어 의식적으로라도 적절한 소통과 함께 타인과의 관계에도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
내 안의 공부와 타인과의 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