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불편한 사람의 고백
나는 인사가 불편하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람 사이의 인사는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호감을 표하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인사는 그저 '어색함의 상징'일 뿐이다. 길에서 마주치며 나누는 짧은 눈인사든 그 뒤에 붙는 가벼운 스몰 토크든 그 모든 과정이 내게는 불편하게 느껴진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그 짧은 찰나에 흐르는 공기다. “너를 알고 있으며 나는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무언의 약속이 나에게는 도무지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는 체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자니 그것 또한 어색하고 우스운 일이다.
특히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상대방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질 때 느껴지는 그 묘한 긴장감이 싫다. 멀리서 이미 서로를 알아봤음에도 본격적인 인사를 나누기 전까지는 모르는 척 시선을 관리해야 하는 타이밍 싸움, 가까워졌을 때 지어야 하는 어색한 미소,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잔상들. 나는 심지어 가장 편안한 사이인 남편과 길에서 마주쳐도 이 특유의 어색함을 느낀다.
요즘은 메시지나 카톡에 답장을 하지 않아도 상대의 말에 ‘좋아요’ 표시만 누를 수 있는 기능이 나에게는 무척 유용하게 느껴진다. 이런 면에서 오프라인에서도 서로 직접 인사를 나누는 대신 스쳐 지나가며 ‘인사 버튼' 하나만 누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나는 너를 인지하고 있고 인사하고 싶지만 서로 어색해지지는 않게 호감만 표현한다"는 신호로 말이다.
미국 사회는 이런 나에게 더 큰 숙제를 던져준다. 그들의 일상적인 인사말인 "How are you?"는 대개 스몰 토크로 이어진다. 대화의 주제를 유연하게 바꾸는 능력자들과 달리 나는 도무지 이어갈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날씨나 주변의 소소한 가십보다는 책 이야기나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라면 며칠이고 나눌 자신이 있지만 신변잡기적인 대화 앞에서는 머릿속이 하얘진다. 상대가 대화를 이끌어도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나면 정적이 흐른다. 이 어색함의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 나는 인사하기를 꺼려하고 오히려 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 불편함과 어색함이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드는 것 같아 피곤하고 그 감정이 상대방에게까지 전달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오히려 오해가 쌓이고 예의 없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역시 밝게 인사하는 사람을 더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부정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과 소모적인 에너지를 감당하기 싫은 마음이 내 안에서 늘 충돌한다.
미국은 외향적인 사람이 더 존중받는 문화다. 소통에 능한 이들이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인식이 강하고 그것이 곧 더 나은 인간상이라는 고정관념도 존재한다. 다행히 아이들은 나를 닮지 않아 이 사회에 적합한 성격으로 자라고 있으니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남는다.
내향적인 사람들도 저마다의 결이 있다. 누군가는 그저 수줍음이 많고, 누군가는 무례하며, 나처럼 그저 이 모든 과정이 어색해 회피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세밀하게 분류해주지 않는다. 그저 ‘인사성 없고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통칭할 뿐이다. 결국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무리를 이루어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소통과 교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불편함이 많은 인간이다. 생각이 너무 많고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통하는 이를 갈구하고 혼자가 편하면서도 내 소중한 이들에게는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은 모순된 존재.
글을 쓰며 나라는 사람을 정리해 보지만 여전히 나는 이랬다 저랬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아직은 더 공부하고 정리해야 할 생각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매일매일 깨닫고 있다. 언젠가는 나의 이런 서투름조차 온전히 수용할 수 있는 평온함이 찾아오기를, 나만의 철학과 삶을 보는 방식이 조금 더 확고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