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당김의 법칙을 완성하는 마음의 이완
어제 딸과 대화를 나누다 ‘운’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렀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얘기하며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이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인간으로 살고 있는 우리는 아직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운을 믿는 사람이다.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세상이 인간의 논리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기운들과 그것들이 부리는 마법으로 작동한다고 믿는다. 인간의 삶은 오직 과학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인류가 오랜 시간 종교와 미신을 만들고 믿어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신의 이름과 형태를 다르게 보지만 결국 공통된 믿음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기운들이 기적 같은 일을 실제로 만들어낸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우주의 기운’이라 생각하며 ‘끌어당김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기도는 그 법칙을 종교적 의식으로 실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 여겨왔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인생의 중요한 시험이나 고비 앞에서도 ‘당연히 잘될 것’이라 믿었고 실제로 결과 역시 그러했다. 이것이 단지 나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약간의 실력과 노력은 있었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찾아오는 행운이나 사람과의 인연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바탕에는 세상의 기운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시크릿> 같은 책들에 심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은 것은 단순한 기원이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중의 자기 계발 채널들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행동하고 적으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보다 중요한 것이 긴장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상태, 즉 이완이라고 생각한다. 이완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명상을 한다. 많은 이들이 명상을 찾는 이유 역시 내면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돌리기 위함일 것이다.
사람이 지나치게 긴장하고 결과에 집착할수록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고 자연스럽지 못한 상태에 빠진다. 그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긍정적인 문장을 수천 번 적어도 소용이 없다. 이완된 상태에서 자신을 믿고 조급해하지 않는 것, 즉 내면의 여유를 갖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게 운을 믿고 긍정의 기운을 끌어당길 때 온 우주가 나를 돕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게 필요한 사람과 상황이 신기할 정도로 눈앞에 나타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전제는 분명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내가 준비되었을 때 비로소 기운도 끌어당겨진다.
때로는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작동하는 ‘운명’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어떤 이는 절실하지 않아도 예정된 길을 걷듯 삶이 자연스럽게 풀리기도 한다. 타고난 운과 운명의 몫은 분명 있다.
하지만 인간은 정해진 운명만 바라보며 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누구는 운 좋게 태어났을지 몰라도 대다수의 사람은 주어진 운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좋은 기운을 끌어당기며 자신만의 최선을 만들어가야 한다.
요즘 읽고 있는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서도 비슷한 결을 느낀다. 헤세의 작품에는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와 닮은 남다른 능력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주변에 사람이 모이고 따르는 기운을 가진다. 헤세 역시 그런 운 좋은 인간 중 하나였을 것이며 그의 문장을 읽다 보면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유리알 유희>에서 이렇게 말한다.
“마음속에 어떤 저항감이나 거부를 느끼지 않을 때라야 최선의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는 내가 말한 이완의 중요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또 어떤 상황을 그는 “꾸지람이 아니라 숨겨진 호의로 여겼다”라고 표현한다. 같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의 결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이것이야말로 운 좋은 사람의 태도일 것이다.
헤세는 또 말한다.
“행운이란 합리나 도덕에 연관된 것이 아니라 본질상 어딘가 마술적인 것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마술적인 행운에 대해 확실히 말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일정 부분 정해진 운명을 안고 태어나지만 그 운명을 어떻게 해석하고 변주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들려 노력하고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가장 좋은 버전의 자신이 되려 애쓰는 것. 타인과의 비교 대신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긍정의 기운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태도.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운이라는 마법’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