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신념이란

신념을 가진 채 나로 남을 수 있을까

by selves

인간에게 신념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때로는 잘못된 신념이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 또한 신념에서 나온다. 나는 인간이 신념을 가질 때 그 무엇보다 강력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신념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은 종교와 정치다. 대화 중 이 두 주제를 피하라는 불문율이 생긴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두 영역 모두 객관적인 정답을 가리기보다는 각자가 무엇을 믿고 어떤 세계관을 선택하는지에 더 가까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철학 역시 비슷하지만 끊임없이 의심하고 수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유연하다. 반면 종교나 정치적 신념은 삶의 방향과 정체성에 깊이 관여하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신념이 강해질수록 인간은 때때로 생존 본능조차 초월하는 선택을 한다. "나 = 내가 믿는 것"이라는 인식이 굳어질수록 신념에 대한 비판은 곧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진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이들이 재산과 목숨을 기꺼이 헌납하는 현상은 신념이 가진 파괴적 위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신념이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존재 이유 그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허무한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탱해 줄 강력한 이유를 갈구하는 인간에게 신념은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강할수록 삶은 선명해진다. 결국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본능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념에 있다.


한번 뿌리내린 신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강화하며 유지되려는 성향을 띤다. 신념을 가진 이는 자신이 믿는 대상의 흠결조차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며 모든 지식을 동원해 방어한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려는 시도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일은 곧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는 신념 그 자체라기보다 신념을 다루는 인간의 태도에서 발생한다. 신념을 절대화하는 순간 다른 관점은 쉽게 배제된다. 맹목적인 신념과 건강한 가치관의 경계는 바로 이 지점에서 흐려진다.


종교는 본래 인간을 위로하고 삶의 불안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성적 설명보다 감정적 공감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이들이 종교를 통해 고통을 견디고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다만 자신이 믿지 않는 신념을 배척하거나 공격하는 순간 신념은 위안이 아닌 갈등의 씨앗이 된다.


정치 역시 유사하다. 정치는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장치이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진영 간 대립의 언어로 소비된다. 이분법이 강해질수록 중간 지점은 설 자리를 잃는다. 중도는 대개 신념이라기보다 이성적 태도에 가깝기에 열렬한 지지나 결집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반면 극단적 신념은 강력한 결집력을 낳는다.


뛰어난 정치인에게 어느 정도의 고집과 강한 색깔, 타인을 이끄는 정신적 에너지가 요구되는 이유다.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생각만으로는 타인을 이끌고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힘든 것이 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다. 이때 정치적 판단은 이성보다는 신념에 가까운 형태로 작동한다.


정치적 영역에서 사람들은 때로 종교적 맹신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내 편의 잘못은 덮고 상대의 사소한 허물은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도덕적 잣대조차 진영 논리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현실에서 이성적 판단의 여지는 점점 좁아진다.


물론 모든 종교인이나 정치적 신념을 가진 이들이 비이성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신념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태도다. 신념이 삶을 이끄는 나침반이 될 수는 있지만 타인을 재단하는 무기가 될 때 갈등은 커진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인간이 신념을 가질 때 비로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신념은 인간을 살게 하는 에너지이자 허무 속에서 자신을 붙잡게 하는 힘이다. 신념 없는 삶은 방향을 잃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나는 신념을 지니고 있는가 아니면 신념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가. 타인의 신념에 휘둘리거나 맹목적인 믿음에 잠식되지 않으면서도 삶의 동력이 되는 건강한 신념을 가질 방법은 무엇인가.


그 균형을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운이라는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