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꿈을 살았던 나
나는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보통 여자들은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지만, 나는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빠는 늘 사업이 제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네 사업을 해야 세상도 변화시키고 돈도 많이 벌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
늘 이렇게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게 내 삶의 목표라 믿으며 살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계 대기업에서 5년을 근무하면서도 계속 내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외국계 기업이었지만 조직이라면 응당 있기 마련인 조직의 위계질서와 정치 문제, 관심 없는 남의 일을 하는 듯한 공허함 속에서 나는 창업을 서둘렀다. 다행히 뜻이 맞는 동료들을 만나 주말마다 창업 스터디를 했고, 마침내 회사를 박차고 나와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운 좋게도 우리는 작은 성공을 거두었고, 투자를 유치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좋은 동업자들, 투자자들, 직원들과 함께 사업은 순항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남편의 미국 MBA 합격으로 인해 내 삶에 예상치 못한 방향 전환이 생겼다. 나는 동업자들에게 사업을 맡기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1년 뒤 나의 부재와 무리한 확장 탓이었을까 우리는 결국 폐업을 결정해야 했다. 남은 돈은 최대한 투자자들에게 돌려주었고 우리는 빈손이 되었지만 '사업가'로서의 경험은 내게 깊은 의미로 남았다. 이후 남편이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면서 의도치 않게 나의 삶은 미국에 정착했다.
그 후 10년 동안 나는 혼자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타국에서의 육아는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심리적 압박감과 체력적 소모를 요구했지만, 그 힘든 시간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는 다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아빠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비로소 찾아온 여유 시간에 나는 독서에 빠져들었다. 20~30대에 나는 자기 계발서와 사업 관련 책들을 읽었다면 3년 전부터는 고전과 철학에 매료되었다. 특히 니체의 철학을 접하면서 내 인생관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했다.
"30년 동안 내 꿈이라고 믿었던 사업은 과연 진짜 내가 원했던 것일까?"
나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다. 그것은 사실 아빠의 꿈이 아니었던가. 사업을 하는 동안 나는 진정으로 행복했던가. 그렇게 나는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탐구하기 시작했다.
30년을 관통했던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막막함에 놓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매일 책을 읽으며 나와 세상에 대해 조금씩 눈을 떠가고 깨달음을 얻으며 한 걸음씩 '진짜 나'에게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AI 시대가 도래하며 인간의 실존적, 철학적 고민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내 안의 성장이 곧 미래 시대를 살아갈 단단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나는 끊임없이 전진하는 나 자신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