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교사 아니세요?

고수(高手)의 표정

by 국화향기

낯선 여자가 저쪽 끝에서 다가온다.

웬일인지 그녀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예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그녀는 나에게 “도”에 대해서 논하고 싶을 것이다.

“저, 혹시 교사 아니세요?”

예상했던 질문이 아니라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도”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여자 때문에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예상을 빗나가기는 했지만 그 질문 자체가 나에게 전혀 나에게 생소한 것은 아니다.

“교사세요?”

“교사시죠?”

사람들은 용케도 내 얼굴에서 쉽게 나의 정체를 알아내곤 한다. 다만,

“네?” 하며

의외라는 표정, 조금 불쾌한 표정, 그런 생각을 해냈다는 것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기를 하는 나 스스로가 진정 웃긴 것이다.


교사는 대체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까?


고교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교육대학 진학을 권유받고 망설였던 것은 그간 내게 교사의 이미지는 그저 따분하고, 재미없고, 촌스럽고 등등 그리 끌리는 직업군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교사 같지 않은 교사가 되려고 이곳, 저곳 다른 분야를 기웃거렸지만, 기울인 노력이 무색하게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종종 내가 교사일 것이라고 쉽게 짐작을 해 버린다.

이쯤 되니, 내 얼굴에서 읽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지는 것이다.


혹자는 불혹이 넘어선 사람은 그 얼굴을 보면 살아온 삶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인즉, 나쁜 짓도 하지 말고, 찡그리는 일도 만들지 말고 살라는 의미겠지만,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 보면 얼굴만으로 쉽게 수를 읽히는 인생은 참 재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 얼굴이 좀 더 재미있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고 궁금해지는 그런 얼굴로 말이다. 또, 때로는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기파 배우들처럼 다양한 감정을 자유자재로 드러낼 수 있었으면 싶기도 하다. 얼굴에 저축된 삶이 많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수월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남들이 내 얼굴에서 쉽게 교사를 읽어내는 일들은 그리 달가운 일은 니다.



학교라는 데는 아이들이 인원수만큼 다양한 인간의 삶이 공존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그런 만큼 다양한 얼굴을 만날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러나, 정작 교사가 지어야 할 표정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김홍도의 "서당"

김홍도의 풍속화는 수업 시간에 자주 활용되는 자료 중의 하나이다. 협동화를 그리는 데에도 활용되고, 명화 따라 그리기에도 활용되기도 한다. 또, 때로는 감상 수업에서 큐레이터가 되어 작품 속의 인물들은 하나하나 따로 떼어내어 살펴보는 활동에 이용되기도 하고, 재구성하기에 따라서 다양한 교과에 활용된다. 그중에서도 “서당”이라는 작품은 단골 자료로 자주 등장한다.

그림 속의 학동들은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혼나서 우는 아이, 놀리는 아이,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 등등…. 그중에서도 나는 훈장님의 표정에 주로 주목하게 된다. 작품 속의 아이 하나가 무슨 일인지 훈장님께 야단을 맞고 울고 있다. 그런데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훈장님의 얼굴 표정은 성난 표정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듯한 안타까운 마음이 묻어 나오고 있다.


우리 세계에서 화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하수(下手)나 하는 짓이다.


그렇게 하자~ 하고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알게 모르게 깨달아 온 기술의 일종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화를 내기보다는 공감하고 측은지심으로 품기를 택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 中에서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에서 “오한결”이라는 교사의 역할과 대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가끔은 교사를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교실.

그곳에서 오한결은 “나는 교사인데….”라는 혼잣말로 자조한다. 교사의 존재마저 인정하려 들지 않은 아이들의 세계에서 그는 가끔은 그런 식으로 무력감의 감정을 느끼지만, 이도 역시 스스로 하수(下手) 임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얼굴에 나타낼 수는 없다. 다만, 좌충우돌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 함께 안타까워하고, 주저 없이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어 주는 공감의 마음이 나타난다.

“혼자 짊어지고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쌤한테 툭 터놓고 얘기해”라고….


이런 이유로 교사의 얼굴은 재미있기보다는 단순해지는 것이다.


20년 넘게 교직에 몸담아 온 내 얼굴도 재미있기보다는 단순해졌고, 결과적으로 정체를 잘 들켜 버리게 된 것이다.


“혹시, 교사시죠?” 하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 상수(上手) 임을 자처하고 싶다. 이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정체를 들킬지언정 결코 수(手)를 읽히지는 않겠다는 지의 표현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때때로 화가 나고, 억울하고 미운 감정이 들 때가 있다. 또 때때로 세속적이고 작은 이익을 얻은 기쁨에 크게 환호를 내지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무림의 고수(高手)처럼 단순하게 정리된 표정과 동작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유유히 사라지는 편을 택한다.


아, 저기...

나를 향해 길을 건너오는 또다른 낯선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다.

“저…. 교사 아니세요? 혹시 도를 아십니까?”

도를 묻는 그녀는 아직 내가 고수(高手)인지는 모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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