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설거지를 하며 간만에 냄비의 찌든 때들을 벗겨내려니 여간 힘이 든 것이 아니다. 늘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 살림살이들은 애초부터 반질반질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대충 더러운 것들만 걷어내고 사는 정도이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유난히 기름때, 탄 자국, 싱크대의 물때 등이 눈에 거슬리는 날엔 그간의 소홀했던 살림 솜씨를 자책하며 이렇게 <아닌 밤중의 홍두깨> 식의 유난을 떠는 것이다.
“뭐였더라, 베이킹소다? 구연산?”
살림을 좀 한다는 블로거가 소개했던 약품도 뿌려보고, 냄비를 들통에 넣어 끓여도 보고, 수세미로도 박박 문지르고, 등등등... 사투 끝에 처음의 꼬질 하던 냄비가 제법 광을 내며 뽀얀 자태를 드러낸다.
“그래, 이거지~”
내친김에 주전자며, 숟가락, 젓가락, 스탠 양푼까지 죄다 꺼내서 2차 광내기 작업에 돌입한다.
주전자.... 숟가락.. 젓. 가. 락... 스.... 탠,..
‘지친 걸까?’
처음의 타오르던 투지는 어디 갔는지, 어느 순간, 쌓아놓은 그릇들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 저걸 다 언제 하지?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다들 일하면서 어떻게 살림을 살까?’
사실 나는 살림이 제일 힘들다.
그럼 성격이라도 털털해서 흐트러진 것들을 잘 참아내기라도 해야 하는데, 나는 선천적으로 <흐트러짐 불안증> 증세를 앓고 있다. 물론 이건 내가 만든 말이다. 그러니 반듯하지 못한 나의 살림살이는 내재적이고 고질적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그럼 제대로 하고 살면 되지 뭐가 문제야 라고 할지 모르겠다. 문제는 어설프게 하다가 제풀에 쉽게 지친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살림이라는 것이 하루 이틀 바짝 한다고 티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루 이틀 손을 놓고 있으면 더러운 티를 팍팍 내게 되는 것 인지라 다른 이들과 똑같은 24시간을 살아가는 일하는 여자에게는 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은 것이기도 하다.
또, 조금이라도 살림을 해 본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식기를 윤기 나게 관리하는 것은 그야말로 집안일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매일 쌓이는 집안 곳곳의 먼지, 여름철이면 더 쏟아져 나오는 빨랫감, 계절마다 정리해야 하는 옷, 이불, 주말마다 다려서 준비해야 하는 아이들 교복 와이셔츠, 화장실 변기, 세면대, 수채 구멍 관리 등등..
게다가 가족들의 식사 준비는 또 어떤가?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직접 쿠키도 만들어 먹이기도 했지만, 한 끼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매번 가족들을 위해 메뉴 선택부터 장보기, 요리하기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오죽했으면 밥에 대해 진지하고도 철학적인 고민을 한 적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살림을 조금만 더 잘하고 욕구를 가지고 있다.
내가 가꾼 우리 집 베란다 화단
#2. “다들 살림도 잘하면서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까?”
어느 순간 욕심이 생겼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신규 시절에 나는 참 서툰 교사였다. 실은 지금도 배울 것이 참 많지만 말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 지도하는 방법, 마음 나누는 법... 등등
특히, 교사니까 수업만큼은 참 잘하고 싶었다.
글 속의 주제를 어떻게 발견하여 자기의 생각을 말하게 할까?
분수의 개념을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음악의 박자 개념을 어떻게 감각적으로 인지시킬까?
낮과 밤의 원리,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하게 할 수 있을까?
선배 교사의 좋은 수업을 찾아다니고, 교과 지도서를 읽고, 다양한 수업 형태를 적용시켜 보고, 수업 지도 연수도 듣고.. 그렇게 노력을 하다 보니 조금씩 나만의 수업 방식이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로 수업을 준비해도 아이들이 받아 주지 않으면 준비과정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계속 인성, 학교폭력, 안전, 진로, 창의력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기를 요구하였다.
그래, 나는 교사니까 이번에도 잘하고 싶었다.
상담 연수, 학교폭력 예방 연수, 안전 교육 지도 연수, 진로 지도 연수 등등 생활지도에 관한 연수를 받으며 아이들과 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수업 시간 짬짬이 아이들에게도 투입하는 한편 다툼이 있는 아이들은 일일이 따로 불러 상담을 시작했다. 물론 거기에는 학부모님과의 상담도 포함되었다.
어느 날인가, 퇴근 무렵부터 시작된 한 어머니의 전화를 끊고 나니, 8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물론 그날의 늦은 저녁은 라면이었다.
나는 살림도 잘하는 좋은 엄마이자 아내이면서유능한 직장인도 되고 싶다.
컬링& 볼링 놀이하는 아이들
#3. “워라벨 (work-life balance)?”
간만에 카톡 프로필로 사람들의 근황을 살펴보다 같이 근무했던 후배의 상태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워라벨?”
뭐든지 똑 부러지게 잘 해내는 사람인지라, “워라벨”이라는 단어가 후배와 왠지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가, 요즘 내 고민과 중첩되어 헤아리다 보니 ‘힘든가?’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잘 지내고 있어?”
그간 연락 없이 지낸 것도 있고, 겸사겸사 전화를 했다.
“어머, 웬일이세요? 잘 지내시죠? 그동안 연락도 못 드리고 죄송해요.”
“나도 못했는 걸 뭐. 학교 새로 학교 옮기고 바쁘지? 그래도 자기는 늘 잘했으니까 지금도 잘하고 있을 거야~”
“에휴~ 잘하기는요. 집도 엉망, 학교도 엉망이에요. 그래서, 한동안 힘들었는데, 학교며 집이며 조금 내려놓으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럼, 힘들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집에 아이들 챙기랴. 그래도 자기 건강 잘 챙겨~ 다음에 한 번 만나서 긴 얘기 나누자~”
“네~ 선배님도 건강하세요. 연락드릴게요.”
짧은 대화로 근황을 묻다 보니 후배도 내 생활과 별반 다른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하는 뇌
#4. 멀티태스킹은 우리를 비효율적으로 만든다
얼마 전, 서점에서 우연히 “정리하는 뇌”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의 저자 대니얼 J. 레비틴이 쓴 책인데, 책의 내용이 나의 상황과 고민에 어떤 해결책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잠시 책을 뒤적이게 되었다.
다 읽어보지 않아서 책 내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뇌의 하루 할당량이 정해져 있는데,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 것에 다 써버 린다.”
“선택지 중에서 진짜 중요한 걸 구분하고, 나머지는 만족하는 습관을 들이면 된다.”
책 속의 이 두 가지 말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어차피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나는 욕심을 부린다. '나는 일과 가정 다 할 수 있어 ' 라고...
어쩌면 깊은 내면에는 얄팍하게도 일과 가정을 다 잡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뭇사람들에게 헛된 칭찬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