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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mi H Jan 16. 2021

똑똑똑...

싱가포르에 간 지 1년 반 정도 지나 이직을 했다. 


모두가 알만한 큰 회사였고 보수도 좋았다. 직급도 한 단계 높았다. 업무량이 이 전 회사보다 훨씬 많았지만, 처음이라 치솟은 의욕 탓에 업무 외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그러다보니 퇴근해서 집에 와서도 12시까지 일하며 잤던 날이 대부분이었다. 업무 성과도 포기할 수 없어 4~5시간 자기를 6개월 정도 지속할 무렵. 몸이 많이 피곤 했는지 감기가 쉽게 걸리기 시작했다. 아프면 쉬어야 하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근면 성실’한 한국인인지라, 병가 중에도 계속 노트북으로 수시로 업무를 보며 제대로 쉬지 않으니 상사가 쉬라고 전화까지 하는 일도 잦았다. 


이렇게 골골대며 겨우 몸을 지탱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입맛도 뚝 떨어지고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뭘 잘못 먹었나?’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병원 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약국에서 급하게 약을 사 먹고 버텼다. 


하지만 설사가 낫기는커녕, 열도 약간 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가 자유로웠던 회사여서 오후 2시 조금 넘어 집으로 가서 일하기로 마음먹고 회사를 나서 지하철역까지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어, 왜 이러지?’ 꾸역꾸역 참으며 걸었다. 하지만 점점  눈 앞이 검은색으로 변하고 어지러워서 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눈에서 펑펑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하기 시작한 나는 가까스로 지하철 역 화장실까지 가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하염없이 나오는 눈물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뛰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 깊은 숨을 몰아 쉬고 내쉬기를 15분 반복했다. 


겨우 진정이 되어 바로 지하철역 약국으로 들어갔다. 약사에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고만 간단히 설명하니 예전에 천식이 있었냐 물어왔다. 아니라고 대답하고 지금도 없다고 딱 잘라 이야기하자 약사가 갑자기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약간 숨이 차있는 상태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신경질적으로 “그러니까 이게 무슨 증상이에요? 약이 있으면 하나 주세요”라고 재촉했다. 약사는 차분하게 다시 내 눈을 보며 “지금 겪으신 증상은 공황 발작으로 보이네요.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서 이야기해 보시고, 무엇보다도 쉬셔야 할 것 같아요”라며 형식적으로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 내 눈을 보니 아직도 좀 전에 울었던 탓인지 눈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내가 공황 발작을 겪다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약사 말이 자꾸 신경 쓰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틀 뒤 정신과 예약을 했다. 




정신과 예약한 날이 다가왔고, 긴장된 마음으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이름이 불렸다.

“똑똑똑…”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 중 가장 긴장됐던 3초의 노크였다. 


노크 소리가 내 머리를 뒤흔들 만큼 크게 들렸다. 갑자기 머리도 희미해지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문도 너무 무거워서 잘 열리지 않았고 흰색 문이었지만 내 눈에는 흐릿한 재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또 그 찰나의 순간에 내가 왜 여기 왔지라는 후회도 밀려들며 도망가고 싶었다. 억지로 발을 떼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어떻게 오셨나요?”

“제가 그저께…”

말을 떼자마자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왜 눈물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사 선생님은 5분 정도 내 눈물이 멈출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이틀 전 겪었던 일에 대해서 말하니 의사 선생님도 공황 발작이라고 했다. 또 오랜 상담 끝에 내가 만성 우울증과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알았다. 우울한 기분이 자주 들고 집과 회사 이외 다른 곳은 전혀 가지 않으며 주말에는 침대에만 누워있고 잠만 잤지만, 그냥 일이 많으니까, 피곤하니까 그런 줄 알았다. 


약을 복용하고 나니 설사도 멈추고 몸 상태가 호전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또 이상한 증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너무 두근거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불쾌하게. 공황 발작과는 다른 듯 비슷한 약간 완화된 공황 발작이랄까. 이것이 하루 종일 계속되어 회사에 있을 수가 없었다. 다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고 약을 처방받았다. 가슴이 뛸 때 유용한 심호흡 법도 배웠다. 하지만 증상이 좋아지다 나빠지다를 반복하며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 특히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에 의존하면서 증상이 더욱 나빠졌다.


나름대로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나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을 파악하고 원인을 제거하면 되지,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처음으로 내 몸이 말을 안 듣고 그 당시 겪는 일에 대해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으니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마음대로 안되기에 더욱더 애를 쓰지만 그럴수록 더 힘들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약에 의지해야 하는 내가 한없이 나약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5년이 지났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우울증이 낫지 않고 건강이 너무나 안 좋아져 일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13년 만이다. 2년 전만 해도 경력이 단절되면 앞으로의 경력에 문제가 있을 것이 두려워 절대 할 수 없었던 결정을 했다. 처음으로 전화로 엄마와 대화를 하며 울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부모님께 나 힘들다고, 쉬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는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말하고 보니 별거 아니더라. 그리고 처음으로 한국의 사계절이 그리워졌다. 


한국 귀국을 한 후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아직도 약의 힘은 빌리지만, 처음으로 내 눈앞의 것이 아닌 내 삶 전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를 너무 돌보지 않았다는 자책과 함께 앞으로는 좀 더 내 심신을 아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5년 전 정신과를 찾아갔던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노크했던 그 문 앞에서 다시 되돌아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5년 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지 않았다면 아직도 침대에서 와인을 홀짝거리며 멍하게 있었을 것이다. 


글을 쓰고 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다이어트도 하고 싶다. 이 바이러스가 없어져 여행도 가고 싶고 사진도 마음껏 찍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시간이 없을 것 같지만 다시 힘이 생겨 기분이 너무나도 좋다. 힘들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항상 행복했던 나이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온 과거와는 달리 조금 더 현명하게 나를 아끼며 즐겁게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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