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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댁셈 Jul 28. 2022

고양이

나에게 고양이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서울에 살 때 나의 꿈은 독립해서 내 집이 생기면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나만 고양이 없어'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고양이 인스타도 팔로우하고 고양이 캐릭터 인스타툰으로 프사도 해놓곤 했다.


그러다 경주로 이사 오면서 마당 있는 사무실을 마련하게 되자 정말 행복하게도 그 동네 길고양이들이 마당 주변에서 종종 목격됐다. 운 좋은 이벤트라 생각하고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츄르를 몇 번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좋았다. 귀여운 고양이를 카메라에 담아보겠다고 열심히 간식으로 유혹해서 사진도 찍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단골로 지나다니는 고양이들을 익히게 되었다. 한 마리 한 마리 특징을 잡아 이름을 지어주었다. 주던 츄르가 다 떨어져서 당근마켓에서 고양이 사료도 샀다. 이제 밥까지 사다니 나도 이제 집사가 되는 건가! 설레었다.


사료가 입에 맞는지 밥은 얼마나 먹고 갔는지 밥통을 시시때때로 체크하고 물도 먹어야 할 텐데.. 하며 고양이 엄마가 된 것 마냥 걱정했다. 밥을 다 비우면 또 채워놓고, 사료통에 빗물이 들어가면 안 되니까 간이 지붕도 만들어줬다.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간 친구들 이름을 대보자면

냥냥이, 소심이, 사모님(말마니), 사장님, 억울이, 삼색이, (엄)근진이가 있다.


우리의 첫 고양이 냥냥이는 애교가 많았다. 발라당도 잘하고 우리를 잘 따라서 귀여워해 줬는데 어느 순간 오지 않았다. 어디선가 잘 먹고 다니겠지, 했는데 한 달 후에 출산을 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애기애기했던 냥냥이가 엄마가 됐다니 기쁜 마음보다 건강이 썩 좋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냥냥이. 다쳤는지 꼬리끝이 꺽여있다.
출산 후 나타난 냥냥이
냥냥이를 따라다니던 소심이. 왼발에 완장이 있다.
사장님, 사모님 시절에서 말마니로 다시 태어남

냥냥이가 사라지고 등장한 건 사모님이었다. 사장님과 커플로 잠깐 왔던 친구들이었는데 어느 순간 사모님 혼자 문 앞에 와서 야옹야옹했다. 밥 달라는 건가 싶어서 밥을 주었는데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다리를 쓱~ 훑고 엄청 애교를 부리는 거였다. 완전 개냥이였다. 이 친구는 말이 너무 많아져서 사모님에서 말마니로 개명을 했다. ㅎㅎ 또 얼마나 귀찮게 하는지 마당을 걸으면 다리사이를 통과해 다녀서 걷기도 힘들었다. 귀찮기도 하면서 또 안 보이면 궁금하고, 그럴 때 나타나 발라당 해주면 나는 또 힐링받았다. 팜므파탈 말마니였다. 눈곱이 많이 껴서 몇 번 닦아주다 안 되겠다 싶어 눈곱 세정액을 주문했다. 그런 후 거짓말같이 말마니는 발길을 뚝 끊었다. 설마 너도 임신한 거니?... 어디선가 잘 먹고 사랑받고 있으리라 믿고 있다. 고양이 소리가 나면 말마니가 왔나 계속 창밖을 살폈지만 아니었다.

말마니의 견제를 받는 근진이

말마니의 빈자리를 채운건 근진이었다. 어디선가 고양이의 눈빛이 느껴진다면 그건 근진이었다. 항상 진지하지만 얼빵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그게 귀염 포인트다. 그런데 사람과 다른 고양이를 엄청 경계해서 밥만 먹고 후다닥 도망가고 곁을 내주지 않았다. 아마 다리를 다친 게 영향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길고양이의 세계에서 밥그릇 싸움은 치열하니까.


우리 집에 방문하는 고양이들이 많을 때엔 근진이는 어쩌다 한번 보는 친구였는데 냥냥이 말마니가 사라지고 나니 근진이가 자주 왔다. 이젠 아예 출근시간 때 되면 밥그릇 앞에서 지켜보고 있다. 야옹야옹과 하악질을 번갈아가면서. 입으론 하악하악 거리며 위협하는데 밥을 부어주면 아주 '빨리 안 주고 안 가냐'라는 느낌이다. 우리 집에서 밥을 먹으면 쓰담쓰담은 허용해줘야 하는데? 언제까지 밥만 먹고 갈 테냐!


아주 삼시 세 끼 때만 되면 오는 녀석이 돼버려서 좀 더 가까워지기로 했다. 밥을 손위에 올려 조금씩 줘보기로 했다. 한참을 경계하다 조금씩 먹는다. 그래도 밥 주는 닝겐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하다. 몇 번의 밀당 끝에 터치하는 것에 성공했다! 근진이도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큰 소리나 큰 움직임, 예상치 못한 터치를 하면 번개같이 몸을 피했다. 살살, 조심스럽게 다가가야겠구나 배웠다. 좀 더 가까워져 털 빗으로 몇 번 빗어주니 진드기도 떨어져 나왔다. 몸을 긁어주니 시원한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또 휙 도망간다. 고양이는 요물이다 정말.


근진이와 가까워진 기념으로 그동안 쓰고 싶었던 고양이 이야기를 적어봤다. 다가가고 싶으면 멀어지고 사랑을 줘도 그만큼 안 돌아오는 고양이를 보며 인간의 사랑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사람 간에는 기대하는 게 있어서 내가 사랑을 준만큼 받고 싶기도 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아쉬운 마음에 미워지기도 하는데 고양이는 그런 마음의 원리가 작동이 안 됐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고양이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면 괴로울 일이 없겠구나. 안심하면 배를 내보이고 발라당 하다가도 언젠가 홀연히 사라지기도 하는 녀석들.


근진이는 바짝 경계하면서 상자 안에서 잠을 청한다. 그렇지만 경계가 심해 편히 잠들지 못한다. 그 옆에서 조용히 앉아 글을 쓴다. 나른한 근진이가 박스에서 나와 기지개를 켠다. 근진이의 발라당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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