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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urquoise Sep 02. 2015

미련한 여자

그래서 더 무겁고, 미안하고, 행복한

'6 Years ago'


평소 넘쳐 나는 사진들을 저장해놓던 어플에 알림이 떴다. 2009년 8월에 찍은 사진이라며 인공지능이 꾸며 놓은 레이아웃은 워터파크에서 찍은 사진들이 각기 놓여 있었다. 래시가드라는 게 없던 시절, 어설픈 러닝셔츠로 삐쩍 마른 몸을 가린 남자와 빛나는 '쌩얼'을 가진(듯 하지만 분명 나 몰래 비비크림은 발랐을법한) 처자가 한껏 들떠 있었다.


워터파크 씬 바로 옆은 더 가관이었다. 8년 전이라고 찍혀 있는 탭 위에는 무려 '해골'과 '빨간 하트'가 버무려진 티셔츠에, 군번줄에 줄줄이 뭔가를 매단 목걸이까지 하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45도 각도로 시선을 깔아 내리며 갓 불이 붙은 담배 한 개비를 비스듬히 물고 있었다. 손발이 오그라들어 더 이상 드래그조차 하기 힘든 순간, 겉멋에 '쩔어 있는' 사내 - 이 사내가 나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계속 3인칭을 쓰고 싶을 정도다 - 옆에 기대고 있는 앳된 여자가 나로 하여금 극도의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게 만들었다. 까만 머리카락에 머리핀을 꼽고, 얇은 카디건과 하늘거리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왜 저 남자와 한 프레임 안에 있는지 모를 청초함이라니. 게다가 애써 거만해 보이는 사내 녀석과 함께 있는 게 대단히 행복해 보이는 눈치다. 그들이 남이었다면, 나는 그 여자에게 왜 이 남자를 만나고 있느냐며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6년 전에도, 8년 전에도, 심지어 11년 전에도 아내는 나와 같이 있었다. 우리는 7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장수 커플이자, 11년째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중견 연인'이다. 아니, 좋게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사실은 아내가 나와 11년째 만나주고 살아주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내와 난 11년 전, 내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던 시절에 만났다. 그 당시만 해도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던 채팅방에서 별 의미 없는 대화 상대로 시작됐던 인연이었다. 여차 저차 하다 '번개'까지 하게 된 아내와 나는 채팅인들의 성지였던 '강남역 지X다노' 앞에서 처음 만났다. 나름 멋진 설정을 한답시고 생전 가본 적 없던 스타X스에서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를 들고 '성지'에서 두리번거리던 나는 만나기로 한 상대방과 부딪혀 뜨거운 커피를 코트에 홀랑 쏟아버리는 우를 범했고, "앗 뜨거"라는 말로 첫 마디를 건넸다. 나는 아직도, "어떡해"라며 발을 동동 구르던 그녀가 입고 있던 초록색 반코트와 까만 숏커트를 기억한다. 11년 동안 생각해봤지만 진흙색 더플코트에 지향점 없는 헤어 스타일을 하고 다녔던, '구린' 내게는 충분히 과분했다.


공익근무요원 기간 동안 수능을 다시 치르고, 나는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에 '신입학'했다. 그리고 그건 갓 취직을 해 돈을 벌기 시작한 애인에게는 재앙이었다. 일반적인  스물다섯이라면 슬슬 정신 차리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 로드맵을 펼쳐야 할 시점일 테지만, 새내기라는 말에 취한 나는 여기 저기 술판을 펼치기 바빴고 그만큼 데이트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술판이 벌어지면 시간만 없었겠나. 안 그래도 빈곤한 주머니는 더더욱 건조해졌고, 만나서 밥 한 끼 먹는 것조차 돈이 있네 없네, 자존심이 상하네 마네, 티격태격하기 일쑤였다. 정말이지, 시쳇말로 '깨지기 딱 좋은' 위험한 커플이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던  스물일곱 무렵, 나는 글을 쓰려면 새벽까지 깨어 있어야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궤변을 펼치며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연애는 벌써 햇수로 4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고 당시 아내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며 연봉도 꽤 괜찮을 때였다. 일주일에 한 번은 고사하고 격주로 데이트하는 것도 잘 지켜지지 않았던 시절, 나는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허세를 부렸다. 나는 지금 비록  아무것도 없지만 네가 너의 시간을 투자할만한 사람이라며, 언론인으로 살게 될 내 '비전'을 믿어 달라며 말이다. 이 정도면 '네 배를 이제부터 만들어 보일 테니 일단 사라'고 그리스 선박왕에게 세일즈를 했다던 故 정주영 회장만큼이나 배짱 좋은 녀석 아닌가. 지금의 아내는, 그 때도 별 말없이 내 '비전'을 사줬다.


얼른 자러 들어와


6년전, 8년전 사진을 보여주며 재밌지 않느냐는 내 말에 아내는 무심한 얼굴로 엄지 손가락을 몇 번 휙휙, 퉁겼다. 그러고는 아이가 땀을 흘리고 있다며 빨리 누우라는 잔소리를 남기고 안방으로 사라졌다. 유X클로의 몸빼 바지에 더 이상 늘어날 수도 없어 보이는 티셔츠를 걸치고 휘적휘적, 방으로 들어간 아내의 모습에서 워터파크의 그녀, 카디건을 걸친 그녀를 연상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하지만 방에 들어가 아들과 같이 누운 저 여자는 '구렸던' 내 패션도, 술 먹느라 돈이 없던 내 주머니도, 허풍임이 분명한 내 비전도 모두 가슴에 품었던 그 사람이다.


"응, 얼른 갈게 미안"


미련한 여자가 틀림없다, 내 아내는. 육아에 치여 '구린' 패션을 껴안을 수 밖에 없고, 쥐꼬리만한 월급에 그 시절 나만큼 쪼들릴수 밖에 없으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며, 여전히 나를 믿으라며 거들먹대는 남자의 등을 보며 살아간다. 아내는 그토록 긴 시간 동안 터무니없는 남자를 믿어 왔고 오늘도, 내일도 믿을 것이다. 그렇게 변하지 않고 11년, 또 11년을 채울 사람이다.

강남역 지X다노 앞의 소녀가 아줌마로 변해갈 수밖에 없는 모습을 지켜 보는 내 마음은 그래서 더 무겁고, 미안하고, 행복하다. 나는 오늘 밤에도 그녀에게서 내일을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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