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생각 없이 열심히, 함께 사는 그들
오늘은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날. 쌀쌀해진 밤 바람 사이로 이번 주도 어김없이 하나, 둘, 저마다 한아름 보따리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집에서 입는 편한 복장이지만 아직도 '너무' 여름이신 602호 아저씨도 보이고, 퇴근하고 미처 옷도 못 갈아입으신 건지 양복 바지에 구두를 신고 나오신 분도 보였다. 전부 다 알고 지내는 건 아니지만 (사실 거의 다 모르고 지내지만) 그래도 낯익은 몇몇 얼굴들이 한껏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모이는 것이 매번 우습기도 하고, 조금은 정겨운 마음까지 든다.
"이거어~! 그거, 그냥 그렇게 버리면 안 돼에~"
"아이 거참, 증말. 저기다 놔요 그러믄"
어두운 조명 밑에서 얼핏 보기에 내 부모님 뻘 정도 되어 뵈는 부부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아저씨 얘기인즉, 플라스틱을 모아두는 마대 자루에 아내가 스티로폼을 섞어서 버렸다는 것이다. 아저씨는 아주머니 손에서 비닐 봉투를 빼앗아 열심히 뒤적인다. 그리고 족발을 먹고 남은 듯한 스티로폼 접시를 '하나' 꺼냈다. '스티로폼'이라고 적힌 헐렁한 마대자루로 향하는 아저씨, 그를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입매가 씰룩거렸다.
'그래, 그거 하나 좀 안 보이면 그냥 넣지. 누가 본다고'
주변을 슥 훑었다. 다들 자기가 가져온 보따리를 풀어 놓느라 여념이 없다. (아마도) 모두들 저 노부부의 대거리 한 판에 귀를 쫑긋 세우고는 있을 테지만, 그 외에 네댓 명이 무얼 하고 있는지에는 그다지 관심들이 없는 모양이다. 묵묵히 공간을 채우는 비닐 봉투 구겨지는 소리, 페트병이 구르는 소리, 소주병이 부딪히는 소리.
그렇게 잠시 바라보다, 새삼스러운 걸 하나 알게 됐다. 누가 뭘 하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무심한 시공(時空)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똑같이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말이다. 저들은 왜, 그리고 나는 왜, 아무도 그렇게 하라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와서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퇴근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나와 이리도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 걸까. 얇은 반바지만 입고 나와 허벅지에 소름이 돋았을 것 같은 602호 아저씨는 왜 저리도 열심히 재활용 쓰레기 보따리를 풀고 있는지. 양복 바지도 못 갈아입고 나와서 구두에 먹다 남은 음료수를 튀기고 있는 저 아저씨는 왜 저렇게까지 의욕적으로 맥주캔을 골라내고 있는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다 보니 방금 전 말다툼을 벌인 노부부가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어둠 속에서 그냥 대충 던지고 들어가면 본인에게는 그게 편할 일을, 왜 싸워가면서 스티로폼 한 조각을 굳이 골라낸 것이냔 말이다.
학교 다닐 적 배웠던 얕은 지식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올랐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파놉티콘'일까, 아니면 프로이트도 풀지 못했다는 인간이 이타적인 이유와 결합시켜야 하나, 멀리 갈 것도 없이 물리학 기본 개념인 '관성의 법칙'이면 충분할까. 갖다 붙이면 뭐는 설명 못할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은 내 손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분리수거의 장에서 온갖 잡생각을 하면서도 나 역시 종이 박스 속에서 아내가 '몰래' 숨겨 놓은 페트 커피잔을 찾아냈다. 그러고는 마치 신병 훈련소에서 밤샘 행군을 하는 신병처럼 터벅터벅, 플라스틱 마대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회학이나 정신분석학, 물리학적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쓰레기 봉투를 뒤적거리는 행동은 그냥, 생활이기 때문이다. 출근 버스를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줄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길을 걷다가 옆 사람과 부딪히면 반사적으로 사과를 하는 것처럼, 앉았던 자리에 흘린 커피 한 방울이 못내 마음에 걸려 냅킨으로 스윽 훑어내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하는 행동인 것이다. 당장 나에게 이로울 것 같은 행동이 있을지언정 그렇게 해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는, 그들을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분리수거는 플라스틱, 스티로폼, 비닐, 종이, 고철, 유리병으로 나누어 배출한다' 같은 규칙을 만드는 게 '질서'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적어도 내 피가 끓던 이십 대에는 분명 그랬다. 법을 만들고, 규범을 널리 퍼뜨리고, 천성적으로 무질서한 '사람'이라는 존재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질서'의 본질이라고 믿었다. 세상을 이끌고 유지하는 건 결국 몇몇 엘리트와 드물게 탄생하는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토록 딱딱하게 생각하던 젊은이의 사고가 해가 지날수록 물컹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규칙을 만드는 게 무슨 큰 일인가 싶은 것이다. 정작 중요한 건 그걸 지켜내는 사람들이었다. 그저 자신들이 배운 대로, 몸에 배인 대로 작은 실천을 묵묵히 이어가는 '보통 사람들'이 있었기에 사람은 매일 타인과 살을 부대끼면서도 잠깐이나마 웃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빈 비닐 봉투를 쉬쉬 흔들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 뒤를 돌아보니 쓰레기를 모두 해치워버리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홀가분해 보였다. 저들도, 그리고 나도 '별 생각 없이 열심히' 분리수거를 했다. 우리는 그렇게 다 같이 살아가는 작은 실천을 오늘도 멋지게 해냈다. 별난 생각에 빠져 있는 나 말고는 아무도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겠지만.
문득, 모두가 투닥거리며 지내고 있는 저 빛나는 성채가, 그리고 그들에 속해 있는 내 모습이 자랑스러워졌다. 세상을 지탱하는 건 분명, 저들 '보통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