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 더
부랴부랴 저녁은 거른 채
느린 퇴근길을 채근하며 병원에 왔다.
아이 엄마는 잠깐 씻으러 간다며
내게 아이를 맡겼다.
오랜만에 단 둘이 남은 아빠와 아들
나는 유모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는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주사가 꽂히지 않은 손을 들어
수염이 바짝 곤두선 내 턱에 갖다댔다.
"아빠가 오늘 하루 종일 우리 아가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아이는 눈동자를 살짝 키우며 내 입을 바라봤다.
"회사에서 일 하는데 우리 아가가 너무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힘들었어 아빠가"
아가는 말없이 인형을 꼭 끌어 안았다.
"우리 아가는 오늘 아빠 보고 싶었어?"
나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아직 몇 마디 말도 할 줄 모르는 세살바기
보고 싶었다는 말이 뭔지 모를 아이에게
공감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어제보다 조금 덜 아픈 모습으로
무슨 얘기인지 몰라도 좋으니
아빠 얘기를 들어줬으면 했다.
"응"
아이는 대답해줬다
고개까지 끄덕이면서
내가, 아빠가 보고 싶었다고 말해줬다.
아이는 그렇게 무뚝뚝한 사랑을 말하고
인형에 얼굴을 부비며 내게 웃어 주었다.
여태 이런 걸 모르고 살았었구나
아이의 그 한 마디가
개구진 웃음을 띄고 날 보는 저 눈빛이
이렇게 내 하루를 가득 채울만큼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서른 다섯 해를 살아오면서
그 잘난 척을 하고 살았으면서
바보 같이, 그런게 어딨냐며
닫고 살았구나 나는
병실 복도를 몇 바퀴 더 돌다가
곰살맞은 그 순간을 또 갖고 싶어서
욕심스럽게도 나는 아이에게 또 묻는다
"우리 아가 오늘 아빠 보고 싶었어?"
눈을 감은 아이는 대답 대신
유모차 밖으로 비져 나온
말랑말랑한 종아리를 흔들어 보였다.
괜찮다 아무래도
아빠는
우리 아가가 해준 한 마디에
서른 다섯해를 다 내어주어도 모자랄만큼
넘치게 행복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