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운명이 나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해봤다.
난 내 운명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할 거라 욕심낸 적 없었다.
그저 남들과 공평하게 불행하고 공평하게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힘들고 눈물 나는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제 행복하겠지’라는 믿음 덕분이었다.
남들보다 유난히 힘들다고 생각들 땐 ‘나중에 남들보다 유난히 행복하려나보다’ 생각했다.
운명이 나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해봤다.
운명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때는 아마 죽음을 맞이하는 시기쯤.
그때는 뭐든 이해되지 않을까
굳이 남들보다 더 불행했던 운명임을 탓하지 않고,
굳이 남들보다 더 행복했던 운명이었음에 기뻐하지 않고,
그저 내가 잘 살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나도 시인처럼 내 운명을 애틋하게 오래 바라보고 있을 것 같다.
다시 운명이 나에게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고마웠어"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