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도 처음이었던 딸
그녀는 자전거 이야기를 했다.
하루는 애가... 아주 당황해가지고 집으로 전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말이 앞뒤가 안 맞고... 엄마 나도 몰라, 모르겠는데, 이러는 걸 제대로 좀 말하라고 혼내가며 들어보니 자전거 안장을 누가 가져갔다는 얘기였어... 없어졌다는 거야 그냥... 너 어디냐 했더니 어디래... 꽤 멀리 갔어 그 어린 게... 그래 그럼 어디까지 와라 하고 내가 갔지 거기로...
아이가 여덟 살 때였다. 안장이 사라진 자전거를 끌며 한 정거장을 걸어온 아이의 얼굴엔 눈물이 번져 있었다. 횡단보도로 마중 나온 엄마를 발견한 아이가 자전거를 끌고 달려왔다. 누가 안장을 가져갔는데 그게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변명하듯 말하는 아이를 내려다보다가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배 쪽으로 당겨 안았다. 아이의 머리가 뜨거웠다. 안장이 있던 자리엔 세로로 솟은 파이프만 남아 있었다. 안장이 사라진 자전거가 곤혹스러운 세계 자체로 보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어느 개새끼가 가져갔을까. 안장은 어디에 있을까. 세상이 아이에게서 통째로 들어낸 것, 멋대로 떼어내 자취 없이 감춰버린 것. 이제 시작이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지... 이렇게 시작되어서 앞으로 이 아이는 지독한 일들을 겪게 되겠지.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거듭 상처를 받아가며 차츰 무심하고 침착한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지...
2016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황정은의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의 한 부분이다. 14년 전 아들을 잃은 두 부부가 아들을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리워했다. 내 아들이 커갈 모습을 기대하면서도 두려워했던,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기에 괴로워했다.
많은 문단으로 이뤄진 소설에서 이 대목이 가장 와 닿았다. 모성애가 진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을 겪게 될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 문단이 더욱 가슴에 남은건 최근 나에게 생긴 조카 때문인 것도 같았다. 요즘 나는 언제쯤 이 아기가 날 알아볼 수 있을지, 언제쯤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지, 궁금해본 적 없는 것들이 궁금해지고, 나는 왜 이렇게나 이 아기가 좋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매일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 아기가 처음 겪게 될 모든 아픔들이 벌써부터 걱정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아기가 중이염에 걸려 코가 막히고 귀가 아파 하루 종일 울고 지치고를 반복했다. 어른들에겐 무뎌질 수 있는 만큼의 아픔을 힘들게 이겨내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아기가 앞으로 겪어야 할 더 큰 아픔들이 쌓여있는 산더미들이 내게도 힘겹게 다가왔다.
또한 나의 엄마를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내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힘든 마음을 털어 놓으며 울었을 때 왜 엄마도 그렇게 울었던지. 무더위에 칭얼대고 있으면 나에게 참으라면서도 아주 오랫동안 시원한 바람을 부채질해주었는지. 어릴적 내 부끄러운 실수들을 왜 자꾸 이야기하고 또 웃었는지.
엄마에게도 자신을 닮은 자식은 내가 처음이었고 모든게 신기했겠지. 또 내가 받은 상처들에 나보다 더 큰 괴로움과 두려움을 느꼈겠지. 엄마의 인생이 남기고 간 나라는 흔적이 남들보다 더 또렷하기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