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부끄러움을 느낀 그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변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게 부끄러워서 서명을 못하겠습니다."
윤동주는 항일독립운동 협의로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 취조를 당했다. 항일조직단체를 구성하고 항일 교육을 하며 반란을 꾀했다는 내용이 담긴 종이 위에 서명하라는 고등형사의 협박에 윤동주가 한 대답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 항일 민족 시인인 윤동주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엄혹한 세상에서 낭만을 이야기 하는 시를 쓰는 자신을 혐오했다. 이는 그의 시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참회록 中>
창씨개명 닷새 전에 윤동주는 <참회록>을 썼다. 윤동주는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 유학을 택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창씨개명을 해야만 했다. 그의 선택은 현실 도피로 볼 수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그의 항일 정신이 더 굳건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야.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이지.”
영화 속, 시인 정지용이 윤동주에게 말했다.
지금도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고민해본다. 모두들 삶의 관성에 이끌려 그저 자신이라는 중심 언저리만 빙빙 돌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부끄럽다 여길 때 세상은 더 좋아질 것이다. 세상을 위해 목소리 높이지 못하는 자신이, 옳지 못한 것임을 알면서 순응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다 여겨 딱 한 번 행동할 때 세상은 변한다.
40년대 독립운동이 그러했고, 80년대 학생운동이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