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설레는 이유

아빠의 고됨이 자식들의 기쁨이 되는 날이었다

by 밀크티

초등학교 3학년쯤 되니 친구들이 하나 둘 "산타는 없어. 산타는 엄마 아빠야"라는 놀라운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난 마치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처음들은 과학자들처럼 그 주장을 완강히 부인했다. 산타클로스가 없다면 크리스마스마다 내게 일어났던 일들은 설명이 안 되지 않는가.


하굣길에 지동설 같은 그 주장을 다시 되짚어봤다.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는 항상 산타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종이에 적어서 창문에 붙여놔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난 항상 원하는 걸 눌러 담은 종이를 창문에 붙였고, 산타는 여지없이 그 선물들을 배달했다.


그래서 나는 그 해 크리스마스에 변주를 주기로 했다. 받고 싶은 선물을 비공개로 하는 것. 베란다 앞에 앉아 하늘을 보며 하는 기도로 대신했다. 아빠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계속 뭘 빌었냐고 물었는데 나는 절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10살의 의심 가득한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이 지났다.


세상에. 다음날 아침 나는 선물을 보고 펄쩍 뛰었다.


"엄마! 내가 산타할아버지한테 햄버거 세트 먹고 싶다고 했는데 진짜로 가져다줬어!!"


그런데 오빠가 받은 선물도 햄버거 세트였다. "오빠도 햄버거 세트 받고 싶다고 빌었어?"라고 물었는데 그 이상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믿음은 1년이 더 연장됐다.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그 해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알려주지 않자 엄마 아빠는 비상이 걸렸다. 엄마는 눈치껏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알아내려고 했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그때 나는 갖고 싶은 게 딱히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산타할아버지, 저는 받고 싶은 선물이 별로 없고요. 그냥 맥도널드 햄버거가 먹고 싶어요"라는 다소 성의없는 소원을 빌었다.


엄마 아빠는 고민을 하다가 선물을 미리 사지 못했다. 그리고 아빠는 23일 밤 회식을 했다. 엄마는 가게가 문 닫기 전에 애들 선물을 사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연하지 않겠는가. 아빠는 선물을 미리 사는 걸 실패했다.


이미 24일이 된 새벽. 아빠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선물을 살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고민하던 아빠의 눈에 밝은 빛이 켜져 있는 맥도널드가 보였고, 황급히 들어가 "영업하지요?"라고 물었다고.

엄마는 햄버거 세트를 손에 들고 온 아빠를 보고 한참 잔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침에 딸의 반응은 조금 당황스럽기도, 다행이기도 했겠지. 내 행복한 리액션은 엄마 아빠의 벌어진 감정의 틈도 매웠다.


그때 당시, 겨우 마흔을 넘긴 아빠가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잔뜩 마시고는 딸의 선물을 사려고 새벽 밤을 뒤졌다고 하니,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몰랐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꽤 슬픈 이야기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항상 내 마음이 뭉글해지는 이유는 어릴 때 받았던 선물보다 이런 기억들 때문인 것 같다. 이런 행복한 기억들 덕분에 올해 크리스마스도 막연히 행복할 거라 기대하게 된다. 그렇게 아빠의 고됨이 자식들의 기쁨이 되는 날이었다. 그때 아빠의 고됨이 또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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