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아는' 어른들이 만든 사회생활 규범
침묵의 부메랑
부모님은 자주 “너는 아직 뭘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그 말의 의미를 알아간다. 불의를 보면 불타올랐던 나는 30대가 되면서 참는 빈도가 늘었다. 주로 내 평판이 걱정되거나,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울 때다.
내가 몸담았던 회사, 심지어 언론사의 이야기다.
아침마다 출근 보고를 했다. “네, 000으로 출근했습니다.” 아침 7시 반부터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답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다른 선배가 내 출근을 확인했다. 진짜 해당 기자실에 왔는지. 아침부터 나를 불신하는 사람에게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건 참 거지 같은 일이다.
업무 시간 쉴 틈 없이 지시가 내려온다. 선배가 “~~ 해라”고 하면 우리는 ‘넵’, ‘알겠습니다!’ 같은 대답을 하는데 1분이라도 늦으면 “아직 대답 안 하는 놈들 뭐야”라며 꾸중했다. 뒤에서 우리는 “화장실 갈 때도 손에서 핸드폰 놓지 말자”며 자조했다.
늘 “위에서 보고 내려오는 거 싫다”고 엄포했다. 부장보다 차장인 본인에게 먼저 보고하란 의미다. 한 번은 내가 확정되지 않은 스케줄을 보고하지 않았다가 그걸 알게 된 선배가 부서 단톡방에 “너 뭐 잘못했는지 말해봐”라고 했고, 도저히 이유를 몰라 고민하고 있으니 “대답 빨리 안 하냐”며 그 안에서 나를 저격했다. 그날 출입처 화장실에서 엉엉 울다가 점심 약속을 나갔다. 단순히 그날의 일 때문이 아니라 뭔가 쌓이고 쌓이던 것이 와르르 무너진 날이었다.
많은 불합리함이 있었지만 조용히 버텼다. 여기서 문제를 일으키면 이직에도 문제가 될 수 있고, 또 나보다 더 발이 넓은 선배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더 오래 그 상황을 겪어온 다른 기자들은 잘 참고 있는 거 같은데 나약한 나만 징징대는 건 아닐까 싶었다.
고민 끝에 이직을 했다. 이직할 때 많은 이유를 들며 회사를 나왔지만 선배들 때문이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거 하나 버티지 못하는 나약한 기자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그리고 이걸 문제 삼고 나간다면 손가락질받는 건 그들이 아니라 나일 게 자명했다.
그런데 내가 나간 후 내 후배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나를 비롯한 모두의 침묵이 만든 소용돌이가 그를 휩쓸고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크다.
며칠 전 회사 블라인드에 ‘부서의 과도한 업무와 선배의 부당한 지시’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그 글은 ‘나쁜 선배’를 고발하는 내용이 아니라 ‘지쳐 나가떨어지겠다’는 담담한 고백이었다. 글이 올라오자 회사에서는 작성자를 색출하기에 바빴고, 그 작성자로 후배가 지목됐다. 심지어 이튿날 “데스크 행세를 하며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기자 때문에 선임 기자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내용의 찌라시가 퍼졌다. (아마도 그들이 만든) 찌라시 내용은 모두 사실이 아닐뿐더러 블라인드 작성자도 후배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소명이 되자 그들은 피해 기자에 대한 사과 한 마디 없이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일하고 있다. 그러면서 회사의 어떤 어른은 아직 서른도 안 된 기자에게 “네가 업계에 계속 있을 거면 문제를 키우지 말라”고 조언했단다.
이걸 문제 삼으면 ‘뭘 모르는 꼬맹이’가 된다. 그리고 뭘 모르고 행동한 꼬맹이는 어른들의 ‘참 교육’을 받겠지. 그리고 그 꼬맹이는 ‘뭘 아는’ 어른이 될 거다. 후배를 도와줄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해봤다. 그런데 10개를 생각했지만 10개를 다 포기했다. 아마도 나는 ‘뭘’ 알기 때문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