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생일 즈음, 할머니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꽝꽝 얼린 초코파이를 잔뜩 들고 왔다. 엄마가 어디서 이렇게 초코파이가 많이 났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노인정에서 받아온 거라고 했다. 오빠와 나는 매일 초코파이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었다. 할머니에게 "다음에도 또 가지고 와요"라고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는 초코파이를 들고 오지 않았는데 나도 조금은 큰 터라 할머니의 초코파이를 찾진 않았다.
벌써 2년 전. 할머니가 많이 아프단 소식을 듣고 서둘러 부산에 내려갔을 때 나는 밤새도록 할머니 손을 잡고 조잘거렸다. 그때 할머니와 나눴던 많은 대화들이 참 좋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억을 더듬어 물어보면 할머니가 추억을 꺼내는 식이었다.
나는 "어릴 때 할머니가 우리 집 올 때마다 초코파이 엄청 갖고 왔던 거 기억나요? 그때 너무 많이 먹어서 저 지금 초코파이 잘 안 먹잖아요"라고 농담을 던졌다가 할머니의 비밀을 듣게 됐다.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는 듯, 비밀도 아니라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그기 할매가 일하러 갈 때마다 간식으로 나왔던 기다. 밭에 있는 시금치 한 줄을 캐면 500원씩 받았는데 아침에 하고 나면 점심때쯤 초코파이랑 우유랑 준다고. 그러면 나는 우유만 먹고 초코파이를 챙기는 기라. 다른 할매들이 왜 안 먹냐고 하면 우리 손자들이 잘 먹어서 가져갈 거라고 하제. 그러면 다른 할매들도 몇 개씩 더 줬다고"
나는 "그랬구나"라고 대답했다. 용케도 눈물을 참아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영정사진 앞에 앉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게 됐다. 나는 그 곁에 가서 이 이야기를 전했다. 엄마는 다시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마냥 엉엉 울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살 수 있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노인정에 가는 여유도 있는 엄마라고 생각했고, 어디선가 받았다며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잔뜩 챙겨 온 시금치도 엄마는 진짜 어디선가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엄마는 벌써부터 노모를 보필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할머니는 여전히 딸을 보살피는 엄마였다. 심지어 딸의 자식들까지도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