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있어야겠다.

할머니가 안쓰러웠다

by 밀크티

어릴 적부터 ‘돈’이란 건 내 인생에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직장을 구할 때도,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돈은 옵션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마지막을 보면서 돈에 대한 생각은 바뀌었다.


노령연금과 자식들이 가끔 주는 용돈으로 할머니는 혼자 힘으로 살아갔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할 때 끝까지 용돈을 주던 유일한 어른이었고, 할머니의 증손녀인 내 조카도 마지막까지 재롱 값을 받았다.


어느 날 머리가 너무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할머니는 시한부를 선고를 받았다. 내년에도, 후 내년에도 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할머니가 길어야 3개월을 산다고.


할머니는 셋째 딸의 집에 오게 됐다. 첫째 딸은 시골에 있어서 불편했고, 둘째 딸은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없던 할머니는 우리 집에 왔다.


할머니는 틈만 나면 사위 보기 민망하며 미안하면서도 우리 집 밖에 방법이 없었다. 할머니는 염치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그것보다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병원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우리가 병원비를 내주는 것도 할머니는 죽기보다 싫었을 거다. 본인이 갖고 있는 돈으로 자식들에게 마지막까지 민폐 끼치지 않으리라 작정한 것 같았다.


우리 집에 오자마자 할머니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통장에 있는 돈을 모두 빼서 가방에 넣어놓는 일이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와 병원에 실려갈 때도 돈이 든 가방을 꼭 쥐고 있었다.


할머니는 가만히 누워있으면서 이따금씩 나에게 “가방이 잘 있냐”라고 물었다.


할머니가 돈에 대한 걱정을 내비칠 때 나는 “할머니 돈 엄청 많아요. 이 돈 다 뭐할 거예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그건 내 장례비다”라고 말했다.

주말마다 나는 부산에 내려가 할머니 손을 잡고 잤다. 할머니가 몇 번이나 혼자 편하게 자라고 했지만 나는 할머니 옆에서 자고 싶다고 우겼고, 할머니는 끝까지 말리지 않고 거친 손을 내어줬다.

할머니는 뇌에 종양이 커진 터라 두통이 심해 잠을 편히 자지 못했다. 그래도, 덕분에 할머니가 깨어있는 새벽시간에 우리는 우리만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는 새벽의 힘을 빌려 속 깊은 이야기도 꺼내놨다.


매일 "내가 빨리 죽어야지"라고 읊조리던 할머니는 그 새벽에 슬쩍 "손녀 보고 싶어서 못 죽겠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나는 할머니의 속내를 엄마에게 일렀고, 엄마는 숨죽여 울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 만에 할머니는 병원에 실려갔다. 바로 전날 할머니에게 며칠 뒤에 또 오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서울을 갔는데... 나와 헤어진 지 12시간도 채 되지 않아 할머니는 사경을 헤매게 됐다.


출근을 한 이른 아침에 엄마에게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핸드폰 속에는 초점 없이 산소호흡기를 끼고 누워있는 할머니가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시선에 핸드폰을 가져갔고, 나는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머니 앞에서 펑펑 울었다.


부장께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부산으로 가는 표를 끊었다.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아빠의 전화가 왔고, 나는 그 전화를 받기도 전에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다.


할머니는 병원에 하루도 채 입원하지 않고 생을 마감했다.


나는 할머니가 살고 싶다는 마음을 놔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할머니는 그 하루의 병원비도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 거라 생각했을 거다. 때문에 오래 살아남는 게 더 두려웠을 거다.


그렇게 할머니는 돈이 아까워서 사랑하는 손녀의 얼굴도 보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가 남긴 돈은 장례식을 치르기에 살짝 부족했다.


지금의 내 나이 때부터 할머니는 혼자서 세 딸을 키웠다. 죽는 순간까지 자식들에게 돈 때문에 아쉬운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빚지는 삶도 살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을 인정하기 시작한 어느 날 엄마는 할머니를 기초수급대상자로 만들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실 할머니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딸들이 부양을 포기하면 수급자로 선정돼 월 60만 원가량을 받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그걸 원했고, 엄마는 잠시 고민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할머니가 사망했을 때 병원에서는 보호자분의 싸인이 필요하다며 차트를 건넸다고 한다. 만약에 할머니가 서류상 부양가족이 없었다면 '보호자'라는 빈칸에 엄마는 사인할 자격이 없었을 거다.


엄마는 본인의 엄마가 돌아가신 그 순간에도 그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 크게 울었다.


돈이... 사람을 더 울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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