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만난 '관계'는 새로운 세계로 뻗어있었다. 그 세계에서 나는 자주 '깨우침'의 파도에 올라타곤 했다.
제주에는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한 크고 작은 모임이 많았다. 이런 모임이 활성화될 수 있는 것에는 제주도의 다양한 지원 사업 역할이 컸다. 제주에 온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우연히 '그림책 읽기 모임'을 알게 되었다. 낯선 제주에서 눈이 번쩍 떠질 만큼 반가운 모임이었다.
그림책은 어린이 책으로 인식되곤 했지만, 10여 명의 어른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각자의 음성으로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울컥울컥 마음에 진동을 일으키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곳이 제주시에 위치해 있었고, 내가 사는 곳에서는 왕복 4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제주도 교통시설이 잘돼있지만, 2017년,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사는 마을에서 제주시로 갈 수 있는 버스는 딱 한대뿐이었다. 70개의 정거장을 지나야 했지만 악조건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버스 타고 지나는 길이 온통 바다니까 괜찮아. 갈 수 있어!'
나는 거의 매일 해안도로를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제주시로 그림책을 읽으러 갔다.
내가 몰랐을 뿐, 그림책의 세계는 이미 넓고 깊었다. 그 안에는 삶의 희로애락과 철학적 질문이 담겨있었다.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그것을 따라가 보면 삶이 가야 할 방향으로 이어졌고, 흐릿했던 색이 선명해지는 걸 느꼈다.
작은 모임이었지만, '편집자'인 운영진 덕분에 훌륭한 그림책 작가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았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그림책 작가들이 우리 전시팀을 만나러 제주로 날아오는 신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림책 모임 장소에는 갤러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린 시즌마다 그림책 속으로 퐁당 들어가는 듯한 입체적인 전시 준비를 했다. 물론, 미술 전공자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전시 준비가 시작되면 일 단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될 만큼 일이 많았기 때문에 즐겁게 전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저, 유명한 작가를 만난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랑받는 작가에게는 '기세'라는 게 있었다.
스토리라인을 만들어 더미북을 만들고, 그림책에서 빠질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작업을 통해 그림책이 탄생했다. 그것을 위해 수없이 쌓아 올린 단단하고 묵직한 기운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작가의 아우라가 담겨있었다. 그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전시를 통해 재현했던 경험은 오랜 시간 글을 쓰고 싶던 내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그때 봤던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그 당시에 만났던 그림책 작가들은 지금 대한민국 그림책을 세계에 알리는 작가의 자리에 있다. 나는 가끔 그 들에게 받은 기운을 꺼내 한알씩 씹어 삼키며 걸어갈 방향을 가늠해 본다.
'자, 그럼 이제 말해 보세요. 어디서 뭐 하다 오셨어요? 나이는 몇 살? 사는 곳은 어디? 차는 뭐?'
어느 모임을 가도 이중 한두 가지의 원색적인 질문이 날아오는 게 오히려 당연했지만, 그림책 모임에서는 이런 걸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연히 자기 이야기를 닮은 그림책을 읽다 눈시울 붉히는 여린 사람을 보아도 ‘왜 우냐고’ 묻기보단 그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타인을 그대로 둔다'는 말은 무관심하게 방치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 말 안에는 은근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우리는 모두 그럴만한 이유를 가지고 산다. 누구도 이유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랬다. 난 제주에 와서야 '타인을 그대로 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배려인지를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