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마다 나름의 습관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을 쓰고 운동을 꼭 했다고 하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새벽이 지난 이른 아침에 일어나 글을 썼다고 했다. 최근에 ‘박상영' 작가 인터뷰에서, 글 쓸 때 필요한 여러 가지 조건 중에 '건강한 척추'가 필요하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난 아마도 그게 부족하지 싶다.
훌륭한 작가들은 꾸준한 글쓰기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운동'이었다. 사유하고 글을 쓰는 행위는 분명 지적 노동이지만, 그것을 잘하기 위해서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 역시 어린이를 만나 수업하고 내 글 쓰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적지 않은 시간을 앉아서 보낸다. 그러다 보니 몸 여기저기서 고통을 호소했다. 주로 어깨와 등 그리고 손이 아팠다. 내 오랜 글쓰기 습관인 손으로 '초고'를 먼저 쓰는 것 때문일 것이다.
깜빡이는 커서를 마주 할 때 생기는 조바심을 견디지 못하고 손으로 쓰기 시작한 게 습관이 됐다. '육필 원고!' 하면 '독립선언문' 정도의 비장한 글이어야 할 것 같고 이미 최첨단 글쓰기 기능이 탐재된 고가의 '아이패드'가 중학생 필수품이라는 세상에 '육필' 이라니! 지나치게 시대착오적 주제로 '하루치 글쓰기'를 때우려는 것인가? 자문하지만 맘에 드는 굵기의 볼펜을 골라 노트에 눌러쓰는 '손맛'은 확실히 달랐다.
요즘도 '초고'는 손으로 먼저 쓴다. 다만, 약해 빠진 체력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경건하지 못하게도 자주 누워서 쓰고 자고 난 자리에 앉아서도 쓴다. 이런 내 자세가 스스로도 맘에 걸리는 날이면, 삐삐롱스타킹을 쓴 작가 아스트린드 그랜도 주로 누워서 썼댔어! 해버린다. 그런 다음 마치 악보를 보며 건반 위에서 춤추듯 오가는 피아니스트의 손처럼 노트 가득 써진 글을 옮길 때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춤추듯 옮겨 다니는 재미를 즐기는 것이다.
얼마 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비장하고 묵묵히 노트에 손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본 막내가 잠시 뒤 자신의 패드에 연결된 펜으로 손글씨를 메모하더니 버튼 하나를 누르자 문서로 바뀌는 과정을 마술쇼 하듯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마치 우린 대화가 통할 리 없다는 듯 말없이 시연해 보일 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신기술 앞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볼펜을 꼭 쥐고 나도 눈으로 전했다.
'얘야, 이야기는 아날로그에서 더 많이 나온단다!'
그저 문서작성을 하는 게 아니잖냐고, 마음 안에 가라앉은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작업이 '글쓰기 아니냐'며 당당히 외쳐봤지만, 사실, 손가락이 많이 아프긴 하다. 조만간 막내의 패드에서도 이야기가 잘 나오는지 확인 한번 해봐야겠다. 확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