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당황하지 않고, 다시 쓰기

시련은 언제든 올 수 있으니!

by 은수

글을 쓴 시간은 결코 헛것이 되지 않았다. 시련이 닥쳤을 때 우린 잠시 흔들릴 수 있지만 상심이 클수록 더 파고 들 일이었다. 당황하지 않고 다시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행위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는 시련에 대비하는 유일한 훈련이었다.


글쓰기에 몰두한 시간은 불안 없이 고요했고 근심 없는 일상은 햇살처럼 따뜻했다. 문제라면 그때가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던 것이다. '평화로운 날만 지속되서는 더 이상 굳건해지기 어렵지!' 삶은 기어이 돌을 던져 내 유리 온실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다.

행복한 순간에
행복한 것을 알아채려면 더욱 겸손할 일이었다.

날아든 돌멩이에 잠시 휘청했던 그날, 쓰던 글에 집중하지 못했고 초고 상태의 원고를 들고 서성이기만 했었다. 돌멩이는 내게 잊고 있던 불행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글을 쓰는 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닫게 했다.


그 일은 낯선 번호로 걸려 온 한통의 전화에서 비롯됐다. 내가 하루치 글을 쓰기 위해 집중해 있던 시간이었고, 전화를 건 사람은 뜻밖에도 돌아가신 아버지 가족인 '이복' 언니였다. 십여 년 전 아버지 장례식 이후 별다른 왕래 없이 지내던 언니는 몇 년 만에 불쑥 전화를 걸어와 마치 며칠 전 헤어진 사람처럼 내 근황을 물었다. 새삼스런 일이었다. 더구나 어쩐 일인지 이복 언니는 잘 지내고 있다는 내 말에도 한사코 혀를 끌끌 차며 내 삶을 좀 더 폄훼하지 못해 안달을 부렸다.


문제는 나였다. 마음이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매일 A4 2장 분량의 글을 쓰면서 마음이 단단해졌다고 믿었지만 결국 그 사람의 문제로 되돌려 버리지 못하고 휘둘리고 말았다. 나는 고장 난 시계의 부품을 모두 분리해 순서대로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떠올리며 숨 고르기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마지막 부품까지 직접 조립하는 동안 내가 모르는 사실이라곤 하나도 없는 상태를 만들고 싶었다. 인정할 것과 인정할 수 없는 것이 명확해졌을 때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쓰기 시작했다.


잠시 주춤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그저 쓸 일이었다. 시련은 손님을 가장해 언제든 찾아올 수 있었고 흔들리고 있다면 흔들리는 상태를 쓰면 될 일이었다. 날것의 '분심(憤心)'을 잠재워 글쓰기의 불쏘시개로 사용해 버리는 것이야 말로 더 이상 글 쓸 수 없는 수만 가지의 핑계 아닌 핑계들과 결별하는 방법이었다. 잠시 평화가 깨진 덕에 더욱 굳건해진 마음으로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다음에는 좀 더 당황하지 않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