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집을 떠나, 쓰기

토 달지 말고!

by 은수

당신 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아마 이렇게 생겼을 거야. 그녀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복잡하게 얽힌 전선들을 가닥가닥 풀어내면서 말을 이었다. 가끔 그런 생각 안 들어? 그 사람 집이 그 사람 머릿속이야.

-김영하 <이사> 중에서


아이들이 방학을 하자, '집'은 한 사람이 아닌 최소 네 명 이상의 머릿속이 뒤엉킨 공간이 됐다. 지난번 '모두의 방에서 쓰기'에 소개했던 거실에서 조차 이젠 글쓰기가 힘들어졌다. 방 3개를 하나씩 차지한 아이들의 방 문은 하루종일 수시로 열렸고, 중간중간 삼시 세끼를 챙겨야 하는 것은 물론, 방학 전보다 처리해 줄 민원사항도 훨씬 늘었다. 그 사이 교실로 오는 어린이와 성인 수업도 했다.


그뿐인가? 아무리 방학이 돼서 바빠졌다 해도 개와 고양이의 집사 노릇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특히, 치와와 '원두'는 간식을 먹기 위해서라면 자유자재로 오줌을 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배변판에 오줌을 한 방울씩 나눠 누며 그때마다 간식을 요구하고 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를 불러대는 꽤나 까다로운 민원견이었다.


집에서 글이 잘 써질 때, 식사 준비나 집안일을 해야 해서 쓰던 걸 멈추고 일어나려면 무척 아쉽기 때문에 아이들이 거실로 나와 화장실이나 주방을 오고 갈 때도 함부로 눈을 맞추거나 미소를 지어 보이지 않고 평정심을 지키려 애썼다. 3M 소프트 귀마개로 최대한 무음 상태를 유지한 채 애써 진지하게 글쓰기에 전념한 것처럼 보 여 감히 범접할 수 없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철통 같은 방어력에도 막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앞에 와서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춤을 췄다. 그럼 도저히 웃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엄마, 오늘 브런치에 글 올렸어?"

큰 딸도 오가며 내 하루치 글쓰기가 끝났는지 수시로 확인했고, 아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다 심각한 표정의 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말을 건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요즘은 오롯이 앉아 글 쓸 자리를 찾아 매일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 게 일과가 됐다. 보따리장수가 따로 없다. 외출복도 챙겨 입었고, 대문을 나서면 됐지만 어디로 갈지 목적지를 쉽게 정하지 못했다. 나가긴 나가돼 거리는 집으로부터 멀지 않아야 하고, 일단 차로 이동해야 한다면 오가며 부서지는 시간은 내겐 사치였다.

'다시 가방을 풀고 그냥 집에서 쓸까?'

생각하며 다시 집안을 돌아봤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더 망설일 것 없이 폭염을 뚫고 갈 각오를 다지며 가방을 둘러멨다. 하지만 밖으로 나오니 폭염이 아니라 비가 오고 있었다. '이거 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도 모르고 사는군!'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하루치 글쓰기'를 위해서라면 집으로 돼 돌아가 선 안될 일이었다. 나는 일단 도로 쪽으로 걸었다. 몇 군데 정해 두고 다니던 카페 중 한 곳을 떠올려 보지만, 그날은 긴 시간 글을 쓸 생각이라 일반 카페가 아닌 '스터디 카페'로 향했다.

새로 생긴 스터디카페였는데 지난번 가 본 곳 보다 가깝기도 했고 무엇보다 시설이 좋았다. 커피도 브랜드 별로 고를 수 있고, 각종 문구류와 간식이 종류대로 갖춰져 있었다. 글을 쓰다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에는 잠시 허리를 펴고 누울 수 있는 침대형 소파가 있었고, 그 옆에는 안마의자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부족함 없이 완벽한 환경이었다.

이제 글만 쓰면 된다!

매일 어찌어찌 완성해 보는 글 한 편은 대체 몇 번의 '멈춤' 뒤에 썼는지 알 수도 없다. 열악한 상황에 비하니 스터디 카페는 글쓰기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쾌적한 환경은 물론, 누구도 글 쓰는 나를 부르지도 않았고 갑자기 앞에 와서 춤을 추는 아이도 없었다. 글이 술술 써지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들이 모두 조용한데도 나는 가족 단톡방에 자꾸 글을 남기고 있었다.

'밥 차려놓고 왔으니 챙겨 먹고 참! 그냥 먹지 말고 데워먹어! 냉장고에 복숭아가 있으니 잘 씻어서 먹고 아, 맞다! 라떼랑 원두 밥 줘야 된다.'

할 말이 끝도 없이 이어졌고 이럴 거면 그냥 집에 있는 게 나았다. 결국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집엔 '근심'이 있어서 창작 작업이 어렵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말은 아마도 할 일이 산적한 곳에서 작업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우회적인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런 핑계로라도 잠깐씩 집을 떠나 글쓰기를 해볼 참이다.


한동안은 매일 아침 오늘은 어디에 앉아 하루치 글쓰기를 마치게 될지 고민하며 '매일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하겠지만 글을 쓸 수 있는 장소의 8할은 '쓰는 이의 마음'속에 있는 게 분명해졌다. 나는 당분간,

집을 떠나고
돌아오길 반복하며 그저 쓰기로 한다.
토 달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