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원칙을 지키며, 쓰기

글쓰기와 자식 키우기의 닮은꼴

by 은수

자식 키우는 일과 글쓰기는 정답이 없다는 점이 서로 닮았지만, 그 둘에도 대원칙이 존재하는 만큼 우리는 그것의 일관성을 마음에 담아 볼 일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봐도 아들은 태생이 '조용한 아이'가 맞았다. 첫째와 터울이 많은 덕에 관심과 사랑을 받았지만, 말수가 적고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표현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사춘기 절정이라 할 중 2 때도 ’조용함'이 더욱 강화된 '굉장히 조용한' 사춘기를 보냈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답답한 것도 사실이지만 착한 것도 확실했고 친구들에게는 항상 인기가 많았다.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친구가 생기는 거지? 말도 안 했는데 뭘 알고 좋다는 걸까?'

의아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래서 좋아할 수도 있었다. 대부분 앞에 나서길 좋아하고 대화 주도권을 가지려는 요즘 아이들 틈에서 친구 얘길 조용히 듣다 한 번씩 웃기나 하는 아들은 좋은 친구일 수 있었다. 그럼, 무리에서 주도권을 쥐지 못한 아들을 지켜보는 엄마 마음은 어땠느냐면 나쁘지 않았다. 정말 괜찮았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역량대로 살게 된다. 말하고 싶은 아이와 듣는 게 더 좋은 아이가 친구가 됐다면 그거야 말로 최고의 조합이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성향이 잘 맞는 4명 친구와 친하게 지냈다. 가끔 친구들과 놀고 온 날은 밖에서 있던 얘기를 해줬다. 볼링치고 떡볶이 먹고 카페에서 꽤 오래 수다를 떠는 분위기가 남고생들 치곤 무척 아기자기하기도 했고 말수 적은 아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


며칠 전, 방학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엄마, 저 내일모레 친구 00이 자취방에서 친구들이랑 하루 자고 와도 돼요? 다른 친구들은 모두 된다고 했어요."

처음 있는 일이라 잠시 당황했다. 아들의 말에는 친구들도 모두 허락을 받았으니 엄마도 분명 허락해 줄 거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일단 즉답을 피한 뒤 다음 날 아들과 다시 마주 앉았다.


"00아, 엄마가 그동안 네가 한다는 일이라면 믿고 지지해 온 거 알지?"

"네, 알죠."

"근데 말이야, 보호자 없이 너희끼리 친구 자취방에서 외박은 허락할 수가 없어. 그날 낮에 친구들 만나서 놀고 잠은 집에 와서 자도록 하자!"


아들은 엄마의 단호한 결정에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좀 더 설득을 해보던 아들은 더 이상 소용없음을 깨달은 뒤 깊은 실의에 빠졌다. 아들은 급기야 주특기인 '조용함'에서 한 단계 상향된 '굉장히 조용함'을 장착하더니 불 꺼진 방에서 하루 꼬박 칩거했다. 뜻을 이루지 못한 아들의 절절함이 닫힌 문 밖에서도 느껴질 지경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밤새 놀고 싶을 나이인 것도 또 무리에서 자신만 빠진다는 게 얼마나 실망스러울지도 모르지 않았지만 일이 처음 시작됐을 때 '원칙'을 정하는 건 중요했다. 나는 미성년자의 보호자 없는 외박을 허용할 수 없을 뿐, 아들에 대한 사랑에는 변함이 없기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열심히 끼니마다 밥을 들여놔주고 과일도 넣어줬다. 착한 아들은 '깜깜한 방' 상태를 고수하면서도 넣어준 밥이며 과일도 야무지게 먹고 빈 그릇으로 내놨다.


하루가 지나자 아들은 평소 꽤나 공들여했던 '여드름 관리'를 다시 시작했다. 연신 '톡톡톡' 볼을 두드리며 피부 관리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집안에 울려 퍼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여전히 과묵한 모습을 보이려 했으나, 여러모로 긍정적인 신호가 보였다. 전날 빼먹은 운동을 하러 외출하는 걸 보고 나는 아들에게 문자를 남겼다.


00아,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었을 마음과 혼자만 허락을 못 받아 억울했을 마음 모두 이해하고 있어.
하지만, 보호자 없이 미성년자끼리 외박은 안 되는 게 맞는 거란다. 온전히 책임의 의무를 갖고 있는 엄마 입장을 헤아려 주길 바라.
혹시 다음에도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처음부터 말해두렴. 함께 놀 수는 있지만 보호자 없는 외박은 안된다고 말이야. 또, 그 일을 허락할 수 없을 뿐, 엄마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할 수 없어.

잠시 뒤 아들에게 짧은 답문자가 왔다.

'감사합니다.'

아들의 문자에 이번엔 내가 당황했다. 아들의 감사함은 엄마 마음의 깊이를 헤아린 뒤에 나온 감사함이 맞을까? 궁금했지만 괜히 물어봤다가 "실수로 보내졌어요!"라고 말할 것만 같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자식 키우는 일이 내내 쉽지 않은 이유는 정답이 없을 뿐 아니라 연습도 없이 '매일'이 실전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아이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상황을 매일 새롭게 겪는 것 말이다. 우리는 어려운 중에도 항상 최선을 선택하기 위해 나름의 '원칙'을 정해 갈등을 줄여야 했다.


문단 안에 문장의 주어와 중심내용 또한 일관성을 유지할 때 글이 됐고, 문장을 정리해 명료하고 단순하게 썼을 때 의도가 정확히 전달됐다. 자식 키우는 일도 일관성의 원칙을 지키며, 전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고 명료하게 전달할 일이었다. 보기엔 다 큰 것 같은 아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여리고 아직 어린 상태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