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조건
(이전 글, 귀 기울이며, 쓰기-1에서 이어집니다)
잠시뒤, 경찰 2명이 도착했을 때까지 계속된 그녀의 소란은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간 뒤에야 조용해졌다. 경찰은 개인정보 문제로 자세한 상황은 알려 줄 수가 없고 일단 부부싸움은 아니며 큰 물건이 넘어간 것은 맞고 적절히 조치했단 얘기만 남겼다 했다.
'신혼부부 사는 집인데 부부싸움이 아니면? 그럼 대체 누가 매일 이런다는 거지?'
경찰이 다녀간 뒤로 윗집은 조용해졌지만 윗집 상황이 미궁에 빠지자 폭탄을 얹고 있는 것처럼 더 불안해졌다.
며칠 뒤, 우리 집 벨을 누른 건 연세가 70쯤 돼 보이는 할머니였다. 어르신은 키가 1미터 40센티가 될까 말까 한 작고 왜소한 체구였다. 몸에 비해 큰 옷을 입고, 마치 함박눈을 맞은 것처럼 하얀 머리카락과 쇠약한 모습이 당장 내 앞에서 쓰러진대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누구... 신지…“
"저... 윗집에서 왔어요."
윗집에서 들려오던 사나운 소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약하디 약한 모습이었다. 어르신은 기운이라곤 하나도 없는 눈빛으로 나와 잠시 눈을 맞추곤 ‘절편'이 소복이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그간의 소란으로 경찰까지 출동하게 되자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에 떡을 돌려 미안한 마음을 전하려는 것 같았다.
'이분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일리는 없을 것 같고, 친정 엄마라도 되는 걸까?'
나는 떡을 받아 들고도 좀처럼 맞춰지지 않는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있었다.
" 딸이랑 둘이 사는데... 딸이 밖으로 나다닐 수 없어서... 미안해요."
애초에 신혼부부가 사는 게 아니었고 매일 뭘 저리 끌고 다니냐고 했던 것이 휠체어였다는 걸 안 순간, 상상이 만든 오해의 파편은 받아 든 접시 위를 어지럽게 떠다녔다. 긴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한눈에 봐도 어려운 형편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픈 딸을 돌보느라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어르신은 딸이 벌인 소란을 사과하느라 온몸을 조아리다 못해 떡을 건네는 손끝까지 미안함을 담아 진심을 전했다
타인의 삶을 속속들이 알 수 없고 모두 알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당연시 여겨진 세상을 함께 살아내기 위해선 오히려 꽉 잠긴 문 안에 누가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서로의 안녕을 묻는 일일지 모른다.
어제 아침처럼 윗집은 오늘도 여전히 엄마에게 퍼붓는 그녀 목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오히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보다 안심이 됐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똑, 똑' (거기 별일 없나요? 우린 가까이에 있어요.) 노크하듯 천장을 두드리면 그녀도 약속을 지키듯 이내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거실에 앉아 하루치 글쓰기를 하면서도 자주 윗집을 생각한다. 저 안에서 모녀의 삶이 너무 팍팍한 것은 아닌지 어르신이 위험하진 않은 지 예의 주시 한다. 나는 ‘이웃이 되는 조건’ 대해 생각하다,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부단히 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