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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Oct 14. 2023

엄마, 나 취직됐어!

한 존재의 성장을 응원하는 일

이른 아침인 6시 40분이었다. 아들 등교 준비를 하려고 거실로 나왔는데 ‘삑삑삑’ 현관 도어록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은 한 번에 안 열렸고 두 번, 세 번 도어록 누르는 소리가 들릴 동안 내 머릿속은 상황파악을 해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뭐지? 누구지? 아들이 아침에 운동을 나갔었나?'

이럴 일은 확률 중에도 가장 가능성이 낮다는 걸 깨닫자 아침까지 술 취한 이웃이 집을 잘못 찾은 걸까? 아님 내가 뭔가 기억을 못 하고 있을까? 혼란스러운 채 중문쯤 도착했는데 '띠리릭' 하더니 문이 열리는 거였다.


다만, 지난밤 문단속을 해둬서 열리던 문은 걸쇠에 걸렸고 그 사이로 큰 딸 얼굴이 빼꼼 보였다. 잠도 덜 깬 상태여서 이게 다 무슨 상황인가 어리벙벙한 채 걸쇠를 풀자, 큰 딸이 집안으로 폴짝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엄마! 나 취직됐어!

큰 딸은 캐나다 로스쿨 과정 때도 이미 로펌이나 정부기관에서 일했었고 제주에서 지내는 1년 동안도 영어강사로 일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취직 자체가 생경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 취직이 이전과 다른 것은 지금껏 달려온 목적지에 가장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딸은 지금 제주에 머물며 '캐나다 변호사 연수 과정'에 참여하느라 집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11월 초엔 캐나다로 돌아갈 예정이고 연수 과정이 끝나는 12월까지 앞으로 일 할 '로펌'이 확정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직 연수 일정이 절반이상 남은 상황에서 몇 군데 로펌에서 면접 요청이 왔었고, 원하던 로펌에서 좋은 소식을 받은 거였다. 딸은 바라던 대로 토론토 중심에 위치한 '형법 전문 로펌'에 취직이 확정됐고 결국 형법 변호사가 되는 소원을 이루게 됐다.


딸은 새벽에 로펌 확정이 되자마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엄마, 나 이제
그냥 살아봐도 되겠어!

수수료 몇 푼도 아끼며 허튼 돈이라곤 써 볼 수 없는 시간을 살았던 딸은 이제 너무 조마조마하지 않고 그냥 사는 대로 살아봐도 되겠다며 기뻐했다.


엄마로서 미안한 순간이 많았지만 결국 우리에게 결핍이 없었다면 지금 이 마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것에 이견없이 수긍할 수 있었다.


죄책감보단 응원을!

딸의 유학생활은 전적으로 딸의 주도와 노력으로 이뤄진 일이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에 엄마로서 미안할 때가 많아서 때론 그것이 마음에 병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딸을 통해 완벽히 독립된 존재의 성장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고, 삶의 부단함과 한결같음에 대해 배우고 깨닫는 기회가 됐다.


늘 그래온 것처럼 냉장고를 뒤져 밥을 차리고 욕조에 물을 받아 주고, 밤을 새우고 온 딸이 잘 수 있도록 자리를 살피는 걸로 고마운 마음을 대신할 뿐이었다.

기쁜 소식은 마음 조리며 기다리지 않아도 이른 아침 느닷없이 도어록이 열리는 일처럼 찾아왔다. 그것은

'요행이 아닌 부단히 꾸려진 삶의 결과물이 되어 문안으로 폴짝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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