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 사이
네가 이걸 그렸다고?
아들 방에 들어갔다가 책상 위에 못 보던 캔버스 액자가 놓인 것을 발견했다. 학교에서 만든 것 같은데 얄궂은 팬티를 입고 울근불근한 근육질이 두드러진 상반신 그림이었다. 평소 수줍음 많은 아이를 대입해 보면 다소 파격적인 행보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아들이 힘주어 드러낸 로망에 대한 고백을 마주한 것 같았다.
아이 셋 커가는 모습이 각기 달라서 신기하고 재밌다. 첫째와 셋째 두 딸과도 성격이 다른 둘째 아들은 아기 때부터 내성적이었는데, 조용히 있다 한마디 웃긴 말을 툭 뱉는 식이었다. 하지만 평소 워낙 말을 안 하니 아들이 입을 뻥긋 만 해도 반가워서 그 귀한 한마디를 놓칠세라 귀를 쫑긋해 집중하게 됐다.
엄마 입장에선 싹싹하고 붙임성 좋은 성격이면 본인이 편하고 좋을 텐데 싶어 안타까웠지만 제각기 태생이라는 게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친구들과 잘 지냈고, 오히려 이말 저말 하지 않는 성격이 친구사이에선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그런 아들이 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무척 의외긴 했지만 말릴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대 환영이었다.
처음엔 사실 얼마나 할지 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얼마 못 가 그만둔다 해도 운동이니 안 한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열심히 해보라 응원했었다. 하지만 아들은 날로 더 운동에 열의를 보였고 내게 식단까지 요구한 상태였다. 나는 기왕 할 거면 도움이 될 만한 체계적인 식단을 준비해 줄 요량으로 자료를 찾아 틈틈이 사이트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세 아이 모두 뼈대가 가늘고 호리호리한 체형인데 두 딸은 안타깝게도 모두 '저체중'에 해당됐고, 아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표준에서도 마른 체구였다. 먹인다고 먹였고 아이들도 잘 먹는 편이지만 살찐 적 없이 줄곧 마른 체형이니 집안 내력일 가능성이 높았다.
일 년을 꼬박 열심히 운동한 아들의 마른 몸에도 근육이 붙는 게 보였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며칠 전 꺼내 입은 동복 셔츠의 어깨와 팔뚝 부분이 꽉 끼는 게 1학년 때 맞춘 셔츠가 이제야 제 옷처럼 맞았다. 아들은 그 모습이 흡족했는지 조용히 거울 앞에 서서 이쪽저쪽 몸을 비춰보고 있었다. 터질 것 같은 웃음 때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얼른 못 본 척 자리를 피했다.
아들 모습에서 우리 집 고양이 라떼가 치와와 원두 앞에서 등을 세우고 꼬리를 부풀리며 옆으로 걷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들을 키우며 상상해 본 적 없는 모습이긴 했지만, 더 강한 존재가 되고 싶은 열일곱 살 남자의 모습은 귀엽고도 짠했다. 크고 힘센 것, 강하고 멋진 것을 갈망하는 어린 남자의 영웅심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강한 것이 '힘'에 있거나 '보이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아들 스스로 ‘가장 다정한 것’에 강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이 또한 성장의 과정일 것이다. 부모로서 자녀와 거리를 둔 채 지켜보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자녀 양육에 있어 지름길은 없었다. 스스로 깨닫고 도와달라고 손내밀 때 잡아 줄 수 있을 뿐이었다. 아들의 로망이 꿈을 찾아가는 원동력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휴일인 어제도 열심히 끼니와 간식을 만들어 내놓았다. 단백질은 물론 과일과 채소도 빠트리지 않고 챙겼다. 가끔은 아들도 깜짝 놀라 "고맙습니다."소리가 먼저 나오는 것 같았다. 식단을 챙겨달라고 부탁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 해줄지는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식단 짜는데 도움 받은 사이트 이름이 '메루치 양식장'(체중증량 사이트) 인건 최대한 비밀로 할 생각이다.
고2 아들과 중2 딸,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 둘과 '오해' 없이 지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 선명하게 표현하는 게 좋겠지만, 가까운 사이에도 말은 오해를 부르기 십상이었다. 더구나 엄마 입장에서 자칫 '판단'하는 말은 '사춘기들'과의 관계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만큼 성의껏 약속을 지키는 내 행동이 메시지로 전달되고,
그 메시지가 말보다
무겁게 아들에게 가 닿기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