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연결고리
얘들아,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지는 말렴!
얼마 전, 열여덟 살 생일을 지낸 아들 앞으로 주민등록증을 신청하라는 통지가 나왔다. 당연한 행정 절차였지만, 이제 곁에서 챙겨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잠시 서운하다가 '이대로 사회적 성인이 된다고?'에 이르자 덜컥 걱정이 앞섰다. 이제라도 아이들과의 건강한 거리 확보를 위해 모르는 것을 차근차근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두고 진행한 대략적인 집안 정리와 청소 루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날, 밤 10시가 됨과 동시에 타이머를 15분에 맞춘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이들 방을 향해 외쳤다.
“지금부터 각자 방정리 시작하자! 세탁바구니에 담긴 빨랫감 세탁기에 갖다 넣고, 내일 입을 옷이랑 가방 챙겨놓자. 실시!"
"예에?"
“군대예요?”
“하하하, 안 하면 어떻게 되는대요?”
엄마를 1도 무서워하지 않는 사춘기 두 놈이 명랑하게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서도 ‘작은 사춘기’ 딸은 부스럭거리며 책상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고2 아들은 짐짓 여유를 부리며 미동도 없는 사이 15분 중 6분이 지나 버렸다.
“9분 28초 남았어~”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아! 엄마, 진짜 타이머 돌렸어요?”
아들은 정말 타이머를 맞출지는 몰랐는지 놀라서 물었다.
“8분 15초 남았어!”
“엄마, 근데요. 15분 안에 안 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싱글싱글 웃는 아들은 엄마가 회초리를 들것도 아니고 뭐 어쩔 수 있냐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어쩔 수 있는 게 없긴 했다. 잠시 말문이 막힐 뻔했지만 늘 그렇듯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엄마랑 좋지 않겠지!”
궁색하지만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
“아이참, 진짜 타이머를 돌리시고 그러냐! “
아들이 빨래바구니를 들고 급하게 방에서 뛰어나왔다. 호기롭게 비웃으며 장난치던 소리랑은 다르게 진심으로 달려 나오는 아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랑 좋지 않은건 원치 않는다는 의사만큼은 확실히 전해졌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다시 "4분!"을 외칠 쯤엔 느긋하기만 하던 사춘기 두 녀석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의 뛰다시피 이불정리, 책상정리와 소형 청소기로 방바닥 청소까지 마무리하는 동안 나도 부엌 정리를 끝마쳤다.
곧바로 10시 15분 알람이 울렸다.
사실 타이머를 15분으로 설정했지만, 각자의 방을 정리하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모두 함께 움직여 후딱 정리를 마친 뒤엔 기분 좋은 성취감이 찾아왔다.
다음날 아침은 분명 하루를 맞는 마음이 쾌적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뭐든 더 해 볼 의욕이 생긴 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매일이 쌓이면 되는 것 아닐까 말이다.
기분 좋은 아침의 시작은 그날 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련해 놓는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이제 취침 전 15분 정리는 미리 다음날 입을 옷을 옷걸이에 걸어두고 책가방을 챙겨 문 앞에 내놓고 잠자리에 드는 하루 루틴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을 곁에서 조금 더 떼내 독립적인 존재로 내놓는 연습을 하며 우리 사이에 건강한 거리를 가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