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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Oct 31. 2023

누가 청소 소리를 내었는가?

본보기의 큰 그림을 그리며

청소를 하면 좋은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쓸고 닦는 청소를 몰라서 못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또한 청소에도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뿐 아니라 청소라는 행위를 통해 얻는 힘이 결코 작지 않지만, 청소할 힘을 내지 못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았다.


도시에서 살다 제주도로 이주한 8년 전, 나는 이삿짐을 싸기에 앞서 대대적인 살림살이 분류 작업을 거쳤다.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이 자연에서 맘껏 뛰놀 환경을 주고 싶은 것이었고, 그다음 이유가 삶의 거품을 빼고 싶은 소망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짐을 줄이는 쪽을 선택했고 6톤이 넘던 짐을 3톤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와 덧붙여 시골 마을에 온 뒤 소비욕구마저 사라진 덕에 그동안 짐을 늘리지 않고 살고 있다. 상황에 맞춘 이유가 컸지만, 구간마다 짐을 줄일 수 있던 기회는 내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환기'의 역할을 한 게 틀림없었다.


큰 그림을 그리다

청소에 요령이 생기기 시작한 뒤로는 머리가 복잡할 때 아예 수행하듯 청소했고, 그 행위 안에 마음을 정화시키는 다른 힘이 있음을 알게 됐다. 곧바로 나는 이 좋은 것을 나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진행형 사춘기인 두 아이에게 섣불리 '청소 같은 소리'를 낼 일도 아니었다. 더 멀리 보기로 했다. 한 번 하고 말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원하는 것은 아이들이 최소한의 습관을 통해 자기 관리 법을 몸에 익히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에 큰 그림을 그려두고 후일을 기약했다. 일단, 물건 파악이 쉽게 되도록 공간 정리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청소 전, 미리 분무기로 물을 뿌려 집안에 떠도는 먼지를 바닥으로 가라앉히는 것처럼 매일 조금씩 청소하며 급한 마음의 기운부터 가라앉혔다.


위에서 시작해 아래로 끝내고, 가장 안쪽에서 밖으로 보내기

효율적인 청소의 순서처럼 아이들 마음을 바꾸는 이치 또한 그와 닮았다. 엄마인 내가 먼저 움직이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따라오도록 하는 게 맞는 순서였다. 말은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더 나았고, 행동을 통해 보여줄 뿐이었다.


매일 한 구역씩 청소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앓아눕더라도 날을 잡은 김에 하루에 몽땅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청소도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됐다. 뚝딱 해내고 보여 줄 욕심을 앞세울 일이 아니었고, 자식 기다리는 마음으로 찬찬히 할 때에야 수행하는 마음과 맞닿을 수 있었다.


심부름시키기 좋은 상태로 만들기

같은 종류의 물건끼리 큰 동선을 맞춰 수납하고 청소했다. 라벨까지 붙여두면 매번 아이들이 물건을 찾느라 불필요한 시간을 쓰다 결국 엄마를 소환할 일이 줄어들 수 있었다.


자식 키우기를 손님 대하듯 하란 말이 있긴 하지만, 정말 손님처럼 지내려는 사춘기 아이들을 두고만 보지 않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심부름시키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었다. '저 지금 공부하는데요?'라는 말은 더 이상 청소에 면피 사유가 될 수 없었다. 공부도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 집이 어수선해지는 것은 공식처럼 맞아떨어졌다. 마음이 힘겨운 상태에서는 어질러진 집안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상황을 인지해도 치울 동력이 생기지 않았다. 손하나 까딱 할 힘은 다른 곳이 아닌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에도 비슷한 듯 다른 두 가지가 있긴 했다.


1) 마음이 몹시 지쳐있는 상태(경중이 다른 우울감을 느끼는 중)

살다 보면 어제까지도 괜찮던 마음이 오늘따라 푹 가라앉기도 한다. 문제는 얼마나 자주, 오랫동안 그런 마음이 생기는 가? 였고, 만성적으로 청소할 동력조차 없는 상태로 아이들을 키울 수 없는 노릇이라 문제였다. 이런 경우는 좀 더 능동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나와 완벽히 다른 세계를 가진 아이는 타자로써 내게 요구하고 기대하다 충분히 엇나갈 수 있었다.


그 당연한 과정을 받아 줄 준비를 하기 위해서 내 마음상태를 최대한 멀쩡하게 유지해야 했다. 그것은 아이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와 아이 사이에 어떤 순간을 피하지 못해 생길 수 있는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다. 브런치스토리 (brunch.co.kr)(이 대목에서는 내가 전에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고백했던 브런치북의 글을 첨부한다.)


2) 실제 몹시 바빠 일에 치인 상태 (이 상태를 방치하면 번아웃이 올 수 있고 우울증의 전단계)

개인적으로 바쁠수록 위와 같은 정리와 청소하기를 꼭 해보길 권하고 싶다. 날을 정해 한 번만 대략적인 큰 정리와 청소를 해두면, 갈수록 청소 시간이나 물건 찾는 시간이 줄어 효율적이다. 또한 심부름시키기 좋도록 짜놓은 동선은 온 가족의 협조를 구하기 용이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내가 할 일이 줄어드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내가 할 대략의 큰 정리와 청소는 끝났다!

이제 나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심정으로 절정의 사춘기를 보내는 두 아이에게  '청소 같은 소리'를 낼 것이다. 더 이상 그들이 가족 공동체 일원이 아닌 척 뒹굴거리지 않고, 자기 주변을 정리할 최소한의 예의를 몸에 익히게 할 결심을 다졌다.


흠흠, 그날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이들 방을 향해 외쳤다.

"얘들아, 10시야~실시!"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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