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들의 열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아들은 생일 며칠 전부터 친구들과 일정이 있다고 했다. 주인공 없는 생일날이 될 예정이지만 생일에 해주는 몇 가지 음식은 원래대로 준비해 '오감을 총동원' 하는 축하를 전할 생각이었다.
음식 준비를 마치고 케이크를 사러 나가려다 생각해 보니 냉장고에 초콜릿, 버터등 케이크 만들 재료가 있었다.
'올해는 집에서 '쇼콜라 케이크'를 굽자!'
쇼콜라 케이크는 만들기도 쉽고 냉장고에 차갑게 넣어두면 간식으로 먹기 좋아서 종종 만든다. 이 참에 막내에게 케이크 만드는 것도 알려 주며 함께 순서대로 반죽을 만들었다.
"엄마, 양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 우리 더 크게 만들어요."
듣고 보니 만드는 김에 좀 더 넉넉히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동안 유지해 온 황금비율을 무시하고 양을 늘린 게 문제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쇼콜라 케이크가 돼야 했지만 반죽이 묽은 나머지 모양이 잡히지 않았다.
'우리 집 공식 쵸코케이크'라 할 만큼 많이 만들어 봤고, 여러 차례 지인 선물도 했었다. 실패할 게 없는 케이크였다. 하지만 맛은 몰라도 모양이 망한 것은 분명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들 생일 케이크'니 만큼 어떻게든 되살리고 싶었다.
케이크의 묽은 반죽을 새로운 틀에 옮기기로 했다. 이미 오븐에서 일부는 익은 상태의 케이크를 과감히 사각틀에 옮겨 부었다. 곱게 채에 친 박력분과 아몬드가루 20g을 추가해 살살 저은 후 다시 오븐에 넣고 굽기 시작했다. 처음 계획했던 둥근 모양 케이크는 사각 케이크로 다시 태어났다.
하필, 생일 케이크를! 내내 아쉬운 맘이 들었지만 언제나 예상 밖의 일은 벌어질 수 있었다. 사실 매일 별일 없이 무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놀라워해야 되는 게 삶이었다. 마음을 고쳐 먹고 보니 이 상황이 아들을 대하던 내 마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생이 내성적인 아이였다. 지금껏 아들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냥 씩, 웃으면 '나쁘진 않구나!' 알 일이었다. 가끔 곁에 와서 친구들과 있던 일을 말해주기라도 하면 그런 게 다 반갑기까지 했으니까.
아들은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아들이 조용히 그림을 그리거나 만드는 일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떤 일이 됐든 자신의 적성을 빨리 찾는 게 중요하단 생각에 미술 관련한 지원을 해줘야 될지 모른다고 혼자 작정했었다. 여기서부터가 바로 엄마의 큰 착각이었다.
아들은 운동을 하고 싶어 했다. 너무 얌전한 애라 운동을 하고 싶다는 것부터 놀랐지만 운동이야 누구든 해도 좋은 것이지 않은가! 더구나 사춘기에 운동하겠다는 걸 말릴 이유가 없었다. 흔쾌히 지원을 약속했지만 오래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아들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약속된 날 운동을 하며 체형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아들을 잘 안다고 생각한 것부터 착각의 연속이었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건 맞지만 아들은 건장한 남자가 될 꿈을 품고 있었다. 열여덟 살, 이제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걸 느낀다. 성공도 쥐어 줄 수 없고 실패를 막아줄 수도 없다.
뼈대가 가늘고 호리호리한 체형을 바꾸기 위해 아들은 부단히 운동하고 식단 조절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고른 영양이 담긴 끼니를 준비해 주고 응원할 뿐이었다. 한참 성장기인 아들은 주중에는 학교에서 먹는 급식을 제외하고 4끼, 주말에는 5끼까지 먹고 나는 폭풍 성장을 돕고 있는 중이다. (체형은 집안 내력이란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살을 찌우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양도 양이지만 질이 좋은 식단을 준비하는데 마음을 쓰고 있다.
살다 보면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계획은 포부이자 '욕심'이기도 했다. 생각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우린 좌절하지만 그때 욕심을 내려놓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길은 얼마든지 있고 가끔 운 좋게 지름길을 만나기도 했다.
"생일 축하한다. 아들!"
재 탄생한 케이크를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혀뒀다 집에 돌아온 아들 입에 한 조각 넣어주었다.
"오~"(아들의 최고 표현이다)
아들은 곧 성인이 될 테고 숱하게 많은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 사이에서 좌충우돌하겠지만 계획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아들이 요행 없이 스스로 즐거운 삶을 꾸리길 바라는 마음을 전해 보는 아들의 열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모양이 바뀌어도
본질이 바뀌지 않으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