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바닥까지 비워낸 뒤 며칠 동안 청소에 몹시 집중하고 있다. 이어폰을 꽂고 오디오 북을 들으면서 종일 청소를 하다 보니 하루에 오디오 북 3-4권이 후딱 읽혔다. 듣다가 그냥 넘길 수 없는 대목이 나오면 청소하던 손을 멈추고 미리 펼쳐놓은 노트에 떠오른 것을 메모해 두고 다시 청소를 이어갔다.
손이 잘 닿지 않는 욕실 구석까지 닦느라 바닥을 기다시피 하는 청소는 수행하는 마음과 닮았다. 이번 한 주는 수행하듯 청소를 하다 졸음이 쏟아지면 잠깐씩 쪽 잠을 자며 내 마음이 가고 싶은 방향을 가만히 느끼며 지내고 있다.
거울에는 청소 노동에 얼굴이 상기된 채 땀 흘리는 모습의 내가 있었다.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정말 내 모습이다. 타인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지 않는 삶은 비로소 평화롭다. 마음 같아선 묵언수행이라도 해보고 싶은 날들이지만 말은 할 수 있는 만큼 줄이고 있다.
주말 브런치 프로젝트가 끝나고 지난 6월 작고하신 '내가 꿈꾸는 그곳' 브런치 작가님 피드에 인사를 다녀왔다. 꿈꾸는 그곳에는 잘 당도해 평안하신 지 안부도 여쭙고 미처 읽지 못한 작가님 글을 밤늦도록 찾아 읽었다. 마치 당신이 떠날 것을 알고 있던 듯 초연히 써 둔 글을 보면 마음이 뭉클했다가도 이내 작가님 특유의 재치 있는 문장을 발견하고 여러 번 웃었다. 보고 또 봐도 참 멋진 분이었다. 얼마큼 마음을 뒤척여야 작가님 닮은 호방하고도 다정한 마음을 글로 쓸 수 있을까 어림해 보는 밤이었다.
지난 며칠 수행하는 마음으로 청소를 이어가는 동안 무엇을 얻는 마음보다는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을 힘을 얻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제는 브런치에 발행했던 187개의 글 중에 이번에 다시 읽으며 미흡하다고 생각한 38편의 글을 발행 취소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닐 테니 발행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다시 매만질 수 있는 글은 손 볼 테고 그렇지도 못한 글은 좀 더 묵혔다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들 수도 있겠다. 우리가 좋은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아끼는 문단을 도려내야만 하는 상황을 나는 이 과정에 차용했다. 지금 쓰는 이 글을 발행하면 다시 150편이 된다. 아깝고 아끼는 것일수록 제 몸에 꼭 맞는 옷을 입혀 줄 결심으로 '너희는 좀 더 어둠을 즐기도록 해!' 당부하며 서랍 속에 담아 뒀다.
청소는 그저 집만 깨끗이 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 부지런한 비질로 나갈 길을 내놓은 것처럼 마음이 내딛는 길을 조금씩 선명하게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