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독립, 멘토가 필요해

양육자라는 멘토

by 은수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조금 더 능력 있는 사람(멘토)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을 때, 최대의 성장이 일어난다. -비고츠키의 근접 발달 영역(ZPD)

그때는 정신과 상담 치료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신경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 자체를 터부시 하던 시절이었다. 20대 양육자였던 나는 멘토가 간절히 필요했지만, 주위에 그런 역할을 해 줄 어른이 없었다. 그런 내게는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자문을 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처음 간 병원 선생님은 인자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았다. 그의 눈빛엔 전문가의 중립성과 이십 대 내담자에 대한 안쓰러움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것은 어렵게 결정한 병원 상담을 꾸준히 이어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스물여덟 살, 나의 첫 멘토였다

나는 상담 때마다 내가 처했던 어린 시절의 상황과 양육자가 된 뒤, 그로 인해 느끼는 심리적 고충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러면 그는 정신 의학적 견해를 동원해 내가 겪은 일의 경중은 물론, 불필요한 자책이나 불안을 멈출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상담 과정은, 그동안 설명되지 못하고 얽혀있던 내 안의 감정을 정리해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가 돼 주었다. 결국, 대물림의 고리를 끊고 싶은 양육자의 간절함은 자기 객관화로 가는 귀중한 통로가 됐다.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판단 없이 들어주고, 기울지 않은 시선으로 건네는 중립적인 조언들은 삶 전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이제 클릭 몇 번이면 원하던 정보를 얻는 시대에 산다. 하지만 그곳엔 선택지만 무수할 뿐, 무엇이 옳고, 어떤 길이 나에게 맞는지 그 방향까지 알기는 어렵다. 결국, 독립을 준비하는 세대에 필요한 것은 그들의 선택과 질문에 대한 고민을 판단 없이 들어줄 멘토의 등장이었다.


공교육 12년을 마치면 사회적 성인이 되는 우리 사회 청년들은 어느 세대보다 똑똑하게 자랐다. 하지만 삶의 경험은 나이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그들에겐 실패와 시행착오, 기다림과 전환에 대한 경험이 필요했고, 그런 삶의 내력을 지닌 이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그 역할을 조건 없는 수용 관계인 양육자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이상적일까.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가르치거나 비교하려는 사람 앞에선 질문이 멈췄고, 자기 확신은 시들해졌다. 그들이 찾는 이는 높은 곳에서 훈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조금 먼저 걸어간 사람이며 한두 번 더 넘어져 본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이들의 목소리를 기다렸지만, 양육자는 불안과 통제를 숨기기 어렵다는 점에서 일을 그르치기 쉬웠다.


지난 상담 과정을 돌이켜 보면, 내 질문엔 항상 그 답이 함께 있었다. 사실, 우리는 불안한 나머지 확신할 수 없을 뿐, 스스로 문제와 해답을 모두 갖고 있다. 그때, 누군가 '괜찮아, 아무 문제도 없어!' 의연하게 말해줄 수 있다면, 우린 모두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갈 힘 정도는 갖고 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은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휘둘리지 않는 어린이, 청소년을 응원합니다.

4,21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2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9화9화. 독립했다는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