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처럼 오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다른 사람들의 말속에서 길을 잃게 된다.— 미셸 드 몽테뉴
독립의 순간은 여러 방식으로 왔다. 어떤 독립은 새순처럼 자라 잎사귀를 늘리는 나무처럼 조심스레 오지만, 어떤 독립은 예고 없이 들이친 벼락처럼 찾아왔다. 단 한 번의 낙뢰, 혹은 경계 위에서 맞닥뜨린 선택의 순간처럼 말이다.
이 순간은 평소엔 결코 보지 못했던 관점을 선물했다. 그것은 미처 연결하지 못했던 기억을 한데 모아, 마치 흩어졌던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는 것처럼 삶의 총체를 드러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우리는 때때로 ‘던져진 존재’ 임을 자각했다. 그 깨달음은 수치심과 좌절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깊은 바닥에서 움트는 재구성의 힘을 품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이 주인공을 몰락시킨 뒤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여는 것처럼, 우리의 독립도 몰락과 재탄생의 리듬 속에서 완성됐다.
바닥까지 내려가 다시 시작되는 발걸음은 필연적으로 위를 향했고,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것을 ‘희망’이라 불러왔다.
그날은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그때 나는, 문상객도 상주도 아닌 애매한 경계 위에 있었다. 나는 엄연히 아버지의 막내딸이었지만, 혼외자로 분류된 탓에 상주 명단에 없었다.
문상객과 아버지 가족들이 분주히 오가는 상가는 혼잡했다. 나는 아버지 영정이 정면으로 뵈는 복도 의자에 커다란 점처럼 앉아 있었다. 아버지 77년 역사가 끝나는 날이었다. 결국 내 존재는 아버지 삶의 오점으로 남는 걸까? 나는 그날, 아버지 영정 앞에서 내 탄생과 성장의 퍼즐을 맞추며 앉은 채 밤을 새웠다. 아버지 역사가 과오 투성이로 책임 없이 끝났더라도 나는, 더 확실히 현실을 알아야 했다. 아버지 가족들에게 내가 오점일 수 있으나 그렇다고 내 삶을 오점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새벽녘 문상객들이 돌아갔을 즈음, 나는 아버지 여섯 자식 중 제일 큰 언니에게 갔다. 이제 나는 애매한 입장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 상주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려주길 정중히 부탁했고, 상복을 입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그들이 나를 그저 '그 애'로 부를 순 있지만, 나조차 그걸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태어남'은 내 선택이 아니었다. 환영받지 못했고, 없는 존재처럼 살았더라도 나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게 진실이었다. 나는 아버지 상을 당한 막내딸로 아버지를 보낼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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