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 말고, 지금 당장
인간은 스스로를 길들이지 않으면 타인에게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도스토옙스키
인간의 성장은 언제나 길들임과 자유 사이에서 이뤄졌다. 사회는 질서와 소속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길들였다. 그리고 개인은 그 속에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아이들은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처음 길들여지고, 동시에 그 울타리를 넘어서는 법을 배웠다. 양육이란, 아이를 원하는 모양대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존재가 자기만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자녀 양육에 있어 물질적 풍족함은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차라리 적절한 결핍이 존재의 성장을 도왔다. 하지만 어떤 걸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정서적 결핍이었다. 문제라면 오늘날은 물질의 빈곤이 곧 정서의 빈틈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요즘 아이들은 모두 같은 브랜드의 옷과 신발을 원하고, 비슷한 말투를 썼다. 오히려 개성은 위험으로, 다름은 결핍으로 간주되는 사회가 됐다. 그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삶보다는 불안 없는 소속감을 택했다. 나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아이들이 위태로워 보였다.
나 역시 아이들의 빠른 성장 앞에서 나는 자주 조급했다. 양육에는 나중이란 없었고, 오직 지금 당장만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물질적 조건만의 문제가 아니고, 아이가 제 나이에 맞는 삶을 살지 못한 채 흐르는 시간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막내 딸의 일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개의 시험이 끝나면 곧 다음 시험이 돌아왔다. 어느 날 아이는 내게 물었다.
"엄마, 학교는 시험 때문에 다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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