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딸 방에 들어가는 방법

독립, 물러서고 홀로 서는

by 은수
타자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무한한 타자성으로 존재한다.-에마뉘엘 레비나스

아들과의 관계가 ‘거리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이었다면, 딸들과의 관계는 ‘거리를 오해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들 방 앞에서 머뭇거리던 나는, 딸들의 방은 너무 쉽게 들어가 버렸다. 가까움은 따뜻했지만, 자주 서로의 선을 넘었다. 그런 탓에 그 두 독립의 결은 사뭇 달랐다. 아들은 멀어짐으로 자기 자리를 찾았고, 딸들은 가까움 속에서 자기 경계를 지켰다.


프로이트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경쟁과 권위의 구도로 설명했다. 하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는 훨씬 더 미묘한 동일시와 분리의 역학을 담고 있다. 정체성은 타자와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무너졌다.

딸들은 엄마를 통해 ‘여성’이라는 언어를 배우지만, 결국 그 언어로부터 벗어나야만 자기 자신이 됐다. 그래서 엄마와 딸의 독립은 단순히 떨어져 사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온전히 타인으로 인정하는 철학적 훈련과정이었다.

딸들이 여성으로 자라는 과정은 엄마의 그림자를 지나 자기만의 빛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엄마는 그 과정을 존중하며 물러설 수 있어야 하고, 딸은 그 과정을 견디며 홀로 설 수 있어야 했다. 결국 독립이란 서로의 곁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자유로운 두 존재가 다시 나란히 서기 위한 약속이었다.


인간관계의 가장 큰 역설은,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히려 타인임을 망각한다는 점이다. ‘엄마와 딸’이라는 절대적 언어 속에서 우리는 그 경계를 쉽게 넘나들고, 때로는 선을 침범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건네는 배려가 타자의 자유를 가두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

진정한 사랑은 거리 두기의 기술이며, 건강한 관계는 타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도 엄마와 딸 사이에선 아무렇지 않게 이뤄졌다. 세상에는 엄마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딸들의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다. 놀랍게도 그들의 관계는 멀리 떠날수록 건강해졌고, 독립은 엄마에게 더 필요한 일이었다.


그때는 큰 딸이 1년 5개월 만에 캐나다로 돌아갈 무렵이었다. 캐나다 변호사 연수과정 중이라 집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서 지낸 두 달여의 기간도 끝난 시점이었다. 큰 딸은 다시 집으로 왔다가 모든 짐을 정리해 며칠 뒤엔 제주에서 인천공항을 거쳐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는 번거로운 일정을 남겨뒀다. 딸이 캐나다 시간에 맞춰 일하느라 낮밤이 바뀐 탓도 있지만, 주중엔 서로 연락할 정신없이 각자 바빴다. 우린 짧은 톡으로 서로 근황 확인만 할 수 있었다.


"딸, 엄마는 요즘 청소에 대한 글 쓰고 있어!"

"아, 청소?... 나 요즘 재판 준비 바빠서 지금 내 방이야말로 청소가 시급한데, 곧 쓰레기 집이 될지도...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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