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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쩔 수가 없는

연대와 연민

by 은수
인생은 끝없이 재현된다.
타인의 삶에 불현듯 연민이 일 때가 있다. 그 감정의 밑바닥엔 언제나 내 삶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삶은 재현되고 우리는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 과연 누가 누구를 위해 헤프게 마음을 열고 타인을 위로할 수 있을까.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오후 다섯 시 무렵이면 나는 단지 내 도로 한편에서 노란색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에는 내 교실에서 제일 어린 여섯 살 현이가 타고 있다. 지난봄, 현이 어머니가 복직하면서 오빠 준이가 다니던 내 교실에 오게 됐다.


나는 현이가 오는 날이면 옷도 평소보다 밝게 입고, 화장도 조금 더 화사하게 했다. 노란색 버스가 내 앞에 도착하면 나는 잠시 현이의 보호자 역할을 했다. 기사님과 유치원 선생님께 목례를 하고, 현이를 맞으며 커다란 가방도 받아 든다. 현이가 내 손을 잡았다. 작지만 긴 하루동안 제 몫을 해낸 씩씩한 손이었다.


나는 현이를 최대한 집에서 엄마가 맞아준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다. 교실로 들어오면 제일 먼저 손을 씻자 말하고, 준비해 둔 과일을 내준 뒤 그림책을 펼쳐 읽어준다. 현이는 그림책 주인공에게 아이다운 질문을 하고, 나는 그 질문을 따라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루하고 길었을 하루가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시간이었다. 마침내 현이가 그리던 그림이 완성될 즈음이면, 종일 그리웠던 엄마가 돌아오는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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