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루에 구멍을 내듯

혼란

by 은수

삶은 결국 문제 투성이었다. 좋든 나쁘든 하나의 문제가 사라질 땐, 새로운 문제에 바통을 넘기는 식이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밥 한 번 주기도 어렵던 길냥이 겨울집을 설치했을 때, 나는 근심 하나를 덜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일정한 시간에 밥을 챙기고, 부스러기 하나 남지 않도록 정리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 약속이라면 얼마든 자신 있었고, 실제로 나는 지난 11월 겨울집을 만든 이후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물론, 약속을 지킨 건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어둠 속에서도 서로의 기척을 알아채고 언제나 반겼다. 그럴 때 나는 위로받았고, 사는 일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밥을 내주고, 녀석들이 그릇을 말끔히 비울 때까지 곁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나를 믿고 의심 없이 밥 먹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녀석들을 위한 어떤 축복의 말이라도 떠올려 전해주고 싶다.

식사를 끝낸 새끼 냥이가 내게로 와 몸을 비빈다. 내가 녀석을 쓰다듬을 때 전해진 보드랍고 따뜻한 온기는 우리가 같은 시간 위를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의외의 방향에서 어둔 그림자를 드리웠다.


새벽녘, 밖에서 고양이 비명소리가 크게 들렸다. 내 곁에서 자던 고양이 라떼가 튀어 오르듯 침대를 벗어나더니 소리가 난 뒷 베란다 쪽으로 뛰었다. 나는 창 밖을 내다볼 새도 없이 서둘러 옷부터 갈아입었다. 시간은 새벽 5시. 소리가 들린 곳은 겨울집이 있는 방향이었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크던 작던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일단,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밖은 깜깜했다. 나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겨울집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깊게 어둠이 드리운 겨울 집 주변은 아무 일도 없던 듯 고요했지만,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턱시도 코트를 입은 새끼냥이는 주차된 자동차 아래서 웅크린 채였고, 어미 인 치즈냥이는 가지만 앙상한 벚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다. 나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녀석들을 불러봤지만, 놀란탓인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뭔가 일이 있던 게 분명했지만, 알 길이 없어 답답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눈에도 수놈으로 뵈는 성묘 한 마리가 나를 피해 멀리 돌아가는 게 보였다. 단지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녀석이었다. 아마도 다른 영역 길냥이가 먹이를 찾아 단지 안에 들어왔다가, 겨울집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자던 녀석들을 공격 한 모양이었다. 혼란스러웠다.


내 선의가 녀석들을 오히려 곤경에 빠트린 거라면? 나는 야생을 살아가는 녀석들에게 인간의 개입이 미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려 했지만, 어떤 해답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낯선 길냥이가 단지를 벗어나는 걸 확인한 뒤, 밥을 챙겨 나왔다. 얼마 후, 진정이 됐는지 녀석들이 내게 다가왔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밥을 먹고 있는 새끼 냥이의 엉덩이 부근 털이 눈에 띄게 솟아 있었다. 빛을 비춰 자세히 들여다보니 혹처럼 부어오른 속살의 상처가 보였다. 내가 상처 부위에 손을 대자 녀석은 아픈지, 냥! 소리를 냈다. 아마도 도망치다 물린 모양이었다. 빠른 조치가 필요했다.

새끼냥이가 이미 내 손을 타긴 했지만, 길냥이를 케이지에 넣어 동물 병원까지 가는 건 다소 무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항상 어미 냥이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나는 상처부위를 최대한 근접 촬영한 뒤, 다니던 동물 병원으로 갔다. 길에서 지내는 녀석들의 상처는 감염에 몹시 취약했고, 녀석들은 작은 상처로도 자칫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나는 상처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상황 설명을 하고, 항생제 일주일치와 소독약을 처방받아 돌아왔다.


항생제는 하루 두 번 주는 먹이에 섞어 먹이고, 희석한 동물 전용 소독제를 거즈에 적셔 하루 두 번씩 상처 소독을 했다. 다행히 녀석은 별다른 저항 없이, 내게 상처치료를 맡긴 채 태연히 밥을 먹었다. 그렇게 3주 가까이 치료를 받는 동안, 녀석의 상처는 심하게 부었다 피고름이 엉겨 붙는 과정을 거쳤다. 마침내 달라붙었던 딱지가 떨어지자, 상처 부위는 동전만 한 모양으로 털이 빠졌다.


내 근심 해결의 상징 같던 겨울집은 녀석들에게 안전한 은신처가 아니었고, 처음 의도와 달리 나의 개입은 다른 문제를 만들고 말았다.

내가 낙심한 사이, 멀리서도 뵈던 녀석의 허연 속살에 속 털이 촘촘히 채워지고 있었다. 흉터는 녀석에게 경험을 선물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녀석이 못내 안쓰럽다. 하지만 야생을 사는 이상, 흉터 하나 남기지 않고 상처 없이 살 수 없음을 녀석도 나도 인정해야 한다.


인간 삶도 그들의 야생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도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몸과 마음에 깊은 흉터를 새기고도 또 다음을 살아가지 않는가.

이때, 헤픈 마음은 상처하나 막을 힘도 없이 무력했다. 그저 곁을 지키고, 그 순간,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하는 일. 헤픈 마음은 그 정도의 역할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삶이라는 자루에 작은 구멍을 내듯, 헤픈 마음을 나눠야 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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