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길냥이들의 ‘겨울 집 공격 사건'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하루는 1층인 우리 집 앞에서 녀석들 울음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두 녀석이 대문을 향해 나란히 앉아 합창하듯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얘들아, 너희 밥 달라고 이제 집까지 찾아온 거야?"
말하고 나니, 그 상황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그런데 녀석들은 내게 따라오라는 듯 연신 뒤를 돌아보며 앞서 갔다, 돼돌아오길 반복했다.
‘이 정도면 곧 말도 하겠는걸?' 나는 서둘러 밥과 간식을 챙겨 나와, 녀석들 뒤를 따랐다. 예상대로 녀석들은 늘 밥 먹는 장소인 겨울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런데 겨울집 입구 즈음에 이르자, 앞서던 녀석들이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평소와 사뭇 다른 행동에도 나는 선뜻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왜? 왜 그래? 빨리 밥 주라고?"
들고 온 작은 종이백에서 서둘러 사료와 종이 그릇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겨울 집 안에서 낯선 고양이 두 마리가 쏜살같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한 마리는 지난번 새끼 냥이를 공격했던 녀석이고, 다른 한 마리는 한 눈에도 건강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또 다른 새끼 냥이 었다.
"너희, 이래서 도와달라고 왔던 거야?"
녀석들이 다른 길냥이들에게 속절없이 집을 뺏기고, 나를 찾아와 도움을 청한 상황이 신기해서 자꾸 웃음이 났다. 하지만 겨울 집을 두고 그들 사이에 이미 영역 다툼이 생겼다면, 마냥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이런 나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결국, 낯선 냥이들은 겨울집을 차지했다. 그즈음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지만, 내가 돌보던 냥이들은 영역 다툼에서 밀려 겨울 집 근처엔 가지도 못했다. 그 며칠, 칼바람을 맞고 단지 안을 떠도는 녀석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밥을 챙겨주러 갔다가 나는 낯선 고양이들과 다시 마주치게 됐다. 그날도 어두운 겨울 집에서 튀어나온 바람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 순간 반사적으로 나온 내 행동에 나는 더 당황하고 말았다.
나는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세게 발을 굴러 불청객들을 멀리 쫓아냈다. 그리곤 내가 돌보는 녀석들을 불러와 밥을 챙겨 먹였다.
그런 내 행동은 모순 그 자체였다.
나는 내가 정성으로 살피는 길냥이와 낯선 길냥이의 차이가 무언지 반문해 보았지만, 변변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저 나는 겨울집을 기준으로 구분 지어진 안과 밖이라는 경계를 확인했을 뿐이다.
경계는 반드시 나쁜 의도로만 생기지 않아서 더욱 조심스럽다. 흔히, 선한 의도로 여겨지는 ‘우리’라는 말을 뱉는 순간 그것은 ‘배제'와도 손 잡았다. 결국, 악한 의도 없이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구조가 바로 '우리'였다.
헤픈 마음은 바로 그 '우리'라는 지점에서 혼란스럽다. 누구를 품는 순간,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제주도 바닷가 마을에 정착했다. 운 좋게도 친절한 이웃들 도움으로 비교적 빨리 마을 공동체에 적응할 수 있었다. 서로 비슷한 또래였던 아이들은 매일 어울렸고, 자연스럽게 엄마들도 친하게 지냈다.
대부분 외지에서 이주해 온 그들은 우리가 이사오기 한참 전부터 나름의 프로그램까지 갖고 공동육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아이에게 형제 같은 친구를 만들어 주려는 취지로 모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임엔 '강력한 우리'로 맺어진 그들만의 단단한 경계가 있었다. 그 경계선은 안과 밖의 아이를 명확히 구분해 가르마 타듯 갈라놓았다.
아이들은 바닷가 작은 마을 아이들답게 종일 새로운 놀이를 찾아, 안과 밖 경계 따위 없이 모두 쉽게 ‘우리'가 됐다. 하지만 끝내 그 경계까지 모두 함께 넘을 순 없었다. 결국, 그들 모임 공동체도 본래 취지와 달리,
'우리'라는 딜레마를 넘지 못했다.
나 역시 아이들을 키우며 여력이 되는 대로 학교 행사에 적극 참여해 왔다. 그럴 때마다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까지 챙기려고 나름 마음을 썼다. 하지만 아무리 배려를 해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경계를 피하긴 어려웠다.
각자의 사정으로 부모가 부재한 아이에게는 학교 행사에 앞장서는 엄마를 둔 친구가 부럽다. 스스로 넘을 수 없는 경계를 맞닥뜨린 아이들은 쉽게 소외와 결핍을 느꼈다. 그것은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이었고, 돌이켜 생각하면 대부분 아무것도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었다.
내 행위의 양면성과 모순에 대해 더 이상 자책만 할 순 없었다. 다만, 이미 해결할 다른 과제가 주어졌음에도 무엇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겨울 집 설치로 인해 길냥이들이 모여들고, 영역다툼으로 인한 소음 발생은 가장 우려하던 일이었다. 무엇보다 정작 보살피려던 녀석들은 집을 잃고 추위에 떨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무한정 겨울 집을 만들 수도, 낯선 녀석들에게 밥을 줄 수도 없었다. 그것은 영역 다툼을 더욱 부추기는 일이 될 뿐이었다.
헤픈 마음에 선긋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우선, 나는 헤픈 마음만으로 모든 길냥이를 다 책임질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겨울집 주변 물청소를 했다. 그다음, 겨울집의 방향을 바꿔 출입 통로의 위치를 변경했다. 겨울 집 안에 다른 고양이 체취가 남았을 보온 깔개도 교체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아파트 단지와 떨어진 야외 주차장 한쪽에 사료를 담아뒀다. 그 길로 길냥이들이 지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담아둔 사료는 몇 시간도 안돼 깨끗이 비워졌다. 무엇보다 그 뒤로 '낯선 길냥이들의 겨울집 점령 사건'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다소 시간은 걸렸지만, 돌보던 녀석들도 다시 정비해 둔 겨울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순 없지만, 적어도 외면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헤픈 마음이라고 모두를 품을 수 없다.
앞으로도 나는 누군가를 도울테고, 의도와 달리 다른 입장의 누군가를 소외시킨 걸 깨닫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외면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헤픈 마음의 선긋기는 때때로 모순을 동반할 테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순을 자각하며 살아가는 태도라 믿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말하는 헤픈 마음의 선긋기란, 마음을 닫는 일이 아니라 내 능력과 책임의 범위를 정확히 인식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