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헤픈 마음은 상처가 사라진 뒤에야 열리는 마음이 아니고, 상처를 안고도 내 삶을 계속 선택하겠다는 태도로부터 왔다.
새해 첫날이었다.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새끼 냥이는 부쩍 어린 고양이 티를 벗었다. 몇 달 새 덩치도 청소년쯤으로 자란 모습이다. 내게 다가와 애처롭게 몸을 비비고 담아준 밥을 허겁지겁 먹던 때와 달리 녀석은 의젓해졌다.
그날도 어미와 똑같이 밥을 줬지만, 녀석은 어미가 밥을 다 먹을 동안 주위 경계를 늦추지 않더니 나중에야 먹었다. 모든 살아서 성장하는 것에는 대견함과 안쓰러움이 교차했다. 상처를 통해 녀석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을 터였다. '새해 복 많이 받아!' 나는 녀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돌아왔다.
서울에서 조카가 오기로 했다. 나는 전날까지 준비해 둔 식재료를 다독여 상차림 준비를 하고 조카를 위해 마들렌을 잔뜩 구웠다. 좋아할 것을 떠올리며 설렘을 느낀 것도 오랜만이었다.
우리가 마지막 만난 건 조카가 청소년 무렵이었으니까, 얼추 20년 만에 만남이었다. 내겐 첫 조카였던 터라 태어났을 때부터 각별하게 마음을 준 조카였다. 하지만 그런 애틋함과 달리 우린 긴 세월 동안 만날 수 없었다.
오고 갈 길이 멀어서도 아니었고, 내가 제주도로 이주하기 전엔 지근거리에 두고도 보지 못했다. 그럴 계기가 될 만큼 대단한 사건이 있던 게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숱한 선택이 보류되던 그사이, 조카는 결혼해서 17개월 된 아이의 엄마가 됐다.
내겐 두 살 터울의 오빠가 한 명 있지만, 거의 왕래 없이 살았다. 어린 시절 엄마의 차별은 남매의 정도 거둬 갈 만큼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아들과 딸을 두고 노골적으로 차별하던 엄마와 그런 오빠에게 수시로 맞아 억울했던 기억은 내게 적잖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인정하거나 바뀌지 않는 그 차별의 구조였다. 성인이 되면서 나는 그 구조로부터 이탈하고 싶었고, 갈수록 원가족과 왕래를 줄이며 살았다.
어른들 관계가 그렇다 보니, 조카와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카 소식도 몇 해 전, 우연히 조카가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였다. 조카의 결혼과 임신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됐을 때만 해도 나는 조카가 보고 싶으면서도 선뜻 연락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세월이 지난다고 저절로 아무는 상처는 없었고, 몇 번을 고쳐 생각해도 시간이 흐른 것 말고 어떤 인정의 말도 들은 게 없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못 본 척 지나쳐, 그저 살던 데로 사는 게 더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조카가 가장 축복받아야 할 순간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면, 그런 나를 어른이라 할 수 있나? 자문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린 것은 폭력 끝에 끊어진 길 위에서, 상처를 이유로 똑같은 선택을 할 순 없다는 점이었다. 분명 다른 방식의 세계를 원했던 나는, 조카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우린 그렇게 연락이 닿았다.
20년 만에 만난 조카와 처음 만난 조카사위가 환하게 웃으며 내 공간으로 들어섰다. 우린 마치 얼마 전 헤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명, 조카의 어린 시절을 고대로 빼닮은, '작은 사람'이 새해 선물처럼 내 품에 안겼다. 시간은 마치 아주 잠시 멈췄던 것처럼 우리를 훌쩍 들어 올리더니 지금, 오늘에 데려다 놓았다. 거기엔 얽히고설킨 관계나 해묵은 상처 따위, 어른거리지 않았다.
이번 조카와의 만남은 내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그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완전히 용서하거나 이해되지 못한 채로도 다음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단 사실이었다.
용서나 화해가 전제되지 않고, 이젠 다 잊었다거나 '여러분, 제가 상처를 극복했어요!'라고 말할 수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나는 조카를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제 나는, 불편한 관계를 회피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사는 동안 우리를 성장시킨 것은 상처 자체가 아니라, 상처를 안고도 내 삶을 계속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졸지에 나를 '고모할머니'로 만들어버린 작은 사람이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 순간 나는, 과거가 아닌 미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그것이 또 다른 헤픈 마음이라 해도, 나는 이제 내가 선택한 삶을 헤프게 끌어안는 성장을 선택하고 싶었다. 새해 첫날, 우리가 맞잡은 손이 따뜻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