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파고드는 마음

책임

by 은수

[지난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조카의 카메라 분실 사건이, 엇박자에도 곁을 지키는 선택을 말했다면, 이번엔 그 자리에서 파고들기로 작정한 헤픈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파고든 마음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다시, 불편을 감수하며 고군분투한다.


드디어 그날이 됐다. 친정어머니까지 총 다섯 명의 친구네 가족은 한 달 동안 필요한 짐을 바리바리 싣고,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들뜬 가족들이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차에 모든 짐을 실었을 즈음, 풀빌라 측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입실할 빌라에 하수도가 터져서 급하게 공사 중이라는 것과 당장 입실이 어렵다는 연락이었다.


빌라 측은 죄송하다며 다른 곳에 위치한 펜션을 우선 예약해 둘 테니, 그곳에서 하루를 묶으라고 했다. 공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바로 입실하도록 하겠다며 내내 읍소하는 내용이었다.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친구가족은 목적지인 동쪽과 정 반대인 서쪽 펜션에 임시 짐을 풀었다. 당연히 기다리던 우리의 만남도 미뤄지면서 양쪽 집 아이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예측 불가한 삶에 이 정도 돌발 상황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하루면 될 거라던 공사가 다시 미뤄졌다는 친구 연락을 받았을 때, 내 헤픈 마음엔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내 주변에 크고 작은 펜션을 운영하는 이웃이 많았지만, 좀처럼 흔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럴 수가 있다고?'

알 수는 없지만, 뭔가 촉이 발동한 나는 풀빌라에서 운영하는 예약 사이트에 접속했다. 여러 건의 예약 관련 댓글과 관리자의 성실한 답변이 즉각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 가족에게 닥친 현실과 상반된 그 평화로움이 오히려 헤픈 마음으로 하여금 뭔가 잘못됐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때부터 내 마음엔 온갖 걱정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했다. 친구 가족은 나를 보고 이곳까지 왔고, 이미 한 달 숙박비 500만 원도 입금했다. 행여나 정말 잘못된 거라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럼, 직접 가보면 되지!'

걱정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나는 헤픈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고 옆 마을에 위치한 풀빌라 단지로 향했다. 친구 가족이 묵기로 했던 빌라 앞에 도착했다. 다 뜯고 공사 중이란 말과 달리 빌라문은 굳게 닫혀 있을 뿐, 주변 어디에도 공사를 했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펜션 예약 사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제부턴 시간 싸움이었다. 나는 가장 빠른 답을 들을 방법을 찾았다. 빌라 예약 사이트에 접속해 이 상황과 해결에 대한 문의 글을 남기고 내 전화번호를 남겨놨다. 그러자 곧바로 빌라 측에서 연락이 왔다.

그는 공사만 끝나면 곧 입실할 수 있다며, 사이트에 올린 글을 당장 내려달라고 했다. 그 말은 나로 하여금 그들이 사기꾼임을 확신하게 했을 뿐 아니라, 내 헤픈 마음에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

"저 지금 빌라 앞에 와 있는데요. 문 좀 열어주세요."


그는 몹시 당황하는 듯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친구 가족의 임시 거처를 정 반대인 서쪽에 잡아 준 이유도 이제 알 것 같았다. 그제야 그는 하수도 공사 때문이 아니라, 예약에 문제가 생긴 거라고 말을 바꿨다. 자기가 곧 문제를 해결할 테니 글부터 내려 달라고 말이다. 펜션 예약 사기가 맞았다.


사기꾼들은 몇 달 전부터 풀빌라 한동에 이중 삼중으로 겹치기 예약을 받아 돈을 챙기는 중이었다. 여름 성수기가 되면서 예약자들이 오기 시작하면, 일단 다른 펜션에 머물게 해 놓고 시간을 벌었다. 이 상황에도 사이트에서 계속 예약을 받는 걸로 보아, 이들이 당장 도망을 간대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친구 돈은 반드시 찾아줘야 한다!'

나의 헤픈 마음에 제대로 시동이 걸렸다. 나는 친구에게 지금까지 확인한 상황을 어렵게 알렸다.

"친구야, 그 대신 내가 숙박비는 꼭 찾게 해 줄 테니까 계좌번호 보내놔 봐!"

어차피 우리가 기다리던 즐거운 여행은 시작도 못하고 끝나게 됐지만, 돈까지 잃고 가게 할 수는 없었다.

"아냐, 작정하고 사기를 친 건데 무슨 수로 돈을 찾아. 우리가 여행 운이 없던 거지. 괜찮아. 친구야."

망연자실한 친구는 오히려 담담했고, 즐거운 여름휴가를 기다리던 아이들과 가족들 모두 잔뜩 풀이 죽었다.


"당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한지 알아요? 일단 상황은 알았으니까, 이 계좌로 환불처리부터 해주세요."

"지금 올리신 글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그땐 환불해주고 싶어도 못해줘요. 그러니 글부터 내려요."

사기꾼은 바닥이 드러나자 뻔뻔스럽기까지 했다.

"환불되는 거 보고 글 내릴 거예요. 바로 입금해 주세요."


친구네 아이들이 우리 집에서 하루를 묵고, 친구 가족은 3박 4일 만에 인천으로 돌아갔다. 한 달을 살 작정으로 왔던 여행에서 험한 일만 겪고 사흘 만에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미안하고 속이 상했다. 하지만 친구 가족이 돌아갔다고 일이 끝난 건 아니었다. 사기꾼과 나의 실랑이는 일주일을 꼬박 밤 낮 없이 계속됐다.

헤픈 마음은 친구의 500만 원을 되찾기 전까지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돼버렸다. 그들은 돈만 훔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기대한 행복한 시간을 지옥으로 만들고, 마음 깊이 상처를 냈다. 돈을 찾는다 해도 이미 생긴 상처까지 치유될 수 없었다.

글을 내리면 돈을 준다는 자와 돈을 주면 글을 내리겠다는 헤픈 마음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동안, 빌라 사이트에는 내 글을 보고 비슷한 피해를 겪었다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글을 내려 달라는 사기꾼의 성화가 이어졌다. 친구는 사기꾼이 내게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하냐며, 500만 원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헤픈 마음은, 그렇게 해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며 결기를 다질 뿐이었다.


"저한테 정말 왜 이러세요."

내가 일주일째 지치지 않고 밤낮으로 전화와 문자를 보내자, 사기꾼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내게 한 말이다. 내가 왜 이러는지를 돼 묻는 게 어이없지만,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한 가지였다.

"환불해 주세요."

사기꾼마저 질리게 해 버린 헤픈 마음 덕에 친구는 일주일 만에 500만 원을 환불받았다. 그 뒤 궁지에 몰린 사기꾼이 잠수를 타면서 다른 피해자들이 사기꾼을 경찰에 고소를 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로부터 다시 일주일 뒤, 나는 저녁 뉴스에서 도망갔던 사기꾼이 대구에서 검거 됐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항상 따뜻하기만 한 것이 헤픈 마음은 아니었다. 때에 따라선 불편을 감수하고도 혼자 남겨졌고, 누군가에겐 질리도록 귀찮은 사람이 됐다.

헤픈 마음은 곁에 남는 선택을 한 뒤에도 성의를 다하기 위해 파고드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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