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알아본다는 것

성의

by 은수

모든 건 결국 태도의 문제로 귀결됐다. ‘성의‘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나 꾸밈없이 참되고 진실한 마음이다. 그러고 보면 헤픈 마음은 성의 있는 태도와 닮았다. 성의는 문제 해결의 목적보다는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지에 대한 증명이다.


현이는 유치원 버스를 타고 내 교실 앞에 내린다. 퇴근한 엄마가 데리러 올 동안 현이는 나와 함께 간식을 먹고, 그림책을 읽으며 활동도 한다. 요즘은 주로 낱말 카드 만들기를 하며 논다. 사실, 예비초등학생이 된 현이를 위해 한글 공부를 하는 거지만, 현이는 전혀 공부라고 느끼지 않는 눈치다.


원래 현이 수업은 6시까지지만, 현이 엄마가 6시 칼퇴근을 하고 달려와도 도착까지 20분은 소요된다. 나는 다행히 그 뒷 시간엔 다른 일정이 없다. 현이 엄마에게 6시 반까지 천천히 와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정확히 6시 20분에 숨을 몰아쉬며 도착하곤 늘 미안해했다.


나는 그때마다 그녀가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매번 원래 약속한 시간보다 내 시간을 20분씩 더 쓰고도 애잔함까지 느끼는 건, 다름 아닌 그녀의 성의 있는 태도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의 거짓이나 꾸밈없는 태도가 내 헤픈 마음에 닿으면 나는 뭐든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며칠 전,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6시 20분에 정확히 벨이 울렸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피부도 까칠했고, 입술과 코밑에는 커다란 포진까지 올라와 있었다. 많이 피곤하구나! 단번에 그녀의 고단함이 내게 옮겨와 스캔되듯 새겨졌다. 우린 평소처럼 현이 수업 내용을 전달하고 웃으며 헤어졌다. 하지만 한결같이 성의를 다하는 그녀의 태도는 오히려 내게 고마운 마음을 남겼다.


다음 날, 현이가 왔을 때 나는 어제 현이 엄마의 피곤한 모습이 떠올라, 뭐든 그녀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수업을 마치고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현이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풀어 빗질을 하고 새로 묶어주었다. 손이며 얼굴도 깨끗이 닦아주는데 현이의 손톱이 꽤 길다. 나는 현이의 손톱도 깨끗이 정돈해 주었다. 그러자 현이는 아침부터 종일 엄마를 떨어져 있던 아이 같지 않고, 아침에 엄마가 단장해 보낸 모습 그대로 같았다.


오랜 시간 아이들을 만나며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인데, 아이들의 손톱 상태는 양육자의 분주함과 꽤 연관이 있었다. 매일 눈에 보이지 않게 자라는 손톱은 잠깐 방심한 사이, 돌봄의 제일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길게 자라 손톱 사이에 까만 떼가 끼며 돌봄의 공백을 드러냈다.


나는 일하는 엄마가 저녁이 돼서야 종일 떨어져 있던 아이를 만날 때 갖게 되는 심정을 알고 있다. 게다가 아침과 달리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얼룩이 묻은 아이 얼굴과 옷을 볼 때, 느끼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현이 엄마가 그런 마음을 갖지 않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나는, 가지고 있던 비타민 영양제 하나를 현이 가방에 넣어 보냈다. 메모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현아, 이거 엄마 갖다 드리고, 엄마 드시라고 전해줘."

야무진 현이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는 그 일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주 수업에서 다시 만난 현이 엄마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다.

"선생님, 감사해요. 너무 감동이었어요."


그것은 그녀의 성의 있는 태도에 대한 나의 화답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만한 일에 눈자위까지 붉어지는 모습을 보자, 나는 그녀의 등이라도 쓸어주고 싶었다.


현이 엄마의 정확한 나이를 알 수는 없지만, 30대 후반이거나 40대 초반쯤으로 예상됐다.

내가 지나온 세대에 비해 많은 자유와 선택권을 부여받았지만, 그만큼 책임도 늘어난 세대의 일하는 여성. 나는 이 나이 때의 워킹맘에게 유독 애잔함을 느꼈다. 그들은 윗 세대로부터 여자도 능력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 결과 일과 양육까지 잘하는 슈퍼우먼 신화가 깊게 내면화된 세대이자 부모에겐 여전히 기대받는 딸인 세대였다.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이런 감정은 연민보단 비슷한 구조를 통과한 사람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그날 내가 그녀에게 건넨 마음은 내가 당신을 알아봤다는 일종에 신호였던 셈이다.

서로를 알아본다는 건 중요하다. 타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자세히 봐야 한다. 그 과정은 오롯이 성의 있는 태도로 증명된다. 결과가 아닌 어떤 자세로 서로를 바라보고, 마침내 알아보는가의 문제 말이다. 결국, 성의란 거창한 도움이 아니라, 먼저 알아보려는 태도였다.

알아본다는 것은 설명을 요구하거나 고마움을 강요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상대를 취약한 위치에 두지 않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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